제14차 창작콘테스트 ( 멍울진 고독 외 4편 )

by heoja posted Nov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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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울진 고독


안녕 오래된 고독아


너를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네가 생각하던 고독과는 소리없는 대비를 이루어
너의 고독을 빤히 들여다보다 갈라진 틈으로 나는 향한다

결말을 말하던 입술은 라벤더 꽃잎을 닮아 가늘게 떨린다 
도로 위 종종 구르던 물기없는 플라타너스 잎에서
향기를 모르던 네가 나온다

너에게 나는 어떤 시퍼런 약점 이었을까
요컨대 사랑하는 사람의 약점이 되는 일만큼 
살갗의 부피가 저렴해지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어떤 날은 지긋이 눈을 감은 네 콧 등을 눈여겨 보다
나와 닮은 굴곡에 뭉뚱그려 너를 안았다
어진 너의 고독이 붉게 타올라 나를 그을린다

나는 변형되다가 되었다가 명랑한 봉오리로 잠시 머문다




향혼의 계절


여자는 어느샌가 가만히 있는 만으로도 
관계의 한계를 그나마 제지 시키는것이라 생각한다

여자는 태어난 가을을 사랑하고 기뻐했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의 공간을 가장 사랑하게 되었고 
봄도 여름도 그럴테니 가을 그리고 겨울도
빽빽하게 자리할거라 한다

여자는 눈이 오니 벛꽃을 기다리고 여우비를 기다린다
독서의 온기마저도 노끈으로 묶어 감춰둔다

여자는 가을도 겨울도 이제 올 여름도 
모두 겁이나고 두려울것이라 한다 
겨울 옷을 정리하다 문득 검정색 목도리를 발견하고
짜임에 잔향이 있을까 하여 코를 가까이 대고 여자는 운다
모든 것이 빠르고 그리고 느리게 스쳐간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여자를 보며 부스스한 제몸 일으켜
꺼낸 목도리의 서랍냄새가 여자를 절박하게 감는다

여자는 내리는 이 비가 싫다
젖은 옷을 뜯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벗겨지지 않은 침묵이 여전히 남아 있다

계절아 이제 그만 여자를 데리고 가자 그만 가자




창 밖의 실선은 아름다워


흰색 아일렛자수의 커튼이 들썩이고
월넛소재 창틀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이 천둥을 들고온다
바로 그때,
창 밖은 아름다운 실선들이 아주 가느다라게 춤을 추고있다
우두두두두 이어지는것같다가 다시 끊어지고 간과했던 추락을 본다
물방울들은 날개라도 달린 줄 알았다 그들의 고통을 간과했다
실선이 그득그득하던 날 당신을 벗삼은 배경을 실선의 연속으로 채운다
모든 실선이 채워질무렵 땅과 땅은 서로를 세게 잡아당기다 다시 세게 놓는다
나는 우두두두 밑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다가 다시 또 추락한다
슬픔을 탓하자 마지막 핑계는 고작 그날 당신의 검정색 장우산이었다
나는 왜 이리도 고약스러운 모습을 가졌을까

왜 정면의 창 밖은 이리도 실선이 많은데
왜 등진 창 밖은 이리도 평온스러운 것일까

외람스럽게도 이 새벽 녘 당신의 실선은 그대로 아름답다





책임



다 내 몫이다

내 몫,


충전하던 충전기가 갑자기 망가진 이유도

내 몫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

갑자기 훅 들어와 내 천장이 데였다면 그것도

내 몫

가끔씩 걸려오는 장난전화따위도

내 몫

그냥 다 내 몫


내가 매사에 허허실실 웃어 그림자가 드리우면

그것도

내 몫

구름이 뭉게뭉게 지다가

갈대밭에 불현듯 뚝 떨어져도

그것은

내 몫,




가을 


하늘이 높아서 하늘이 높다고

가을이 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의 겨울은 길고 여름은 짧았다 

매년 여름이면

유난히 땀이 많던 나를 기억할까봐 

바람이 흐르고 흘렀으면 좋겠거니 생각한다 

오지도 않은 겨울 냄새는 코 끝을 시리게 한다 

같은 향기가 나지 않은 길을 걸으며 

손목사이의 봄이 사라진다


허 자 연 /  wkdys773@gmail.com / 010-6350-1086

저의 시를 읽어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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