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의 사랑
늙은 사랑이 등 뒤에 있다
백석의 시처럼
아내도 없고 아내와 살던 집도 없어진
늙은 아버지가 등 뒤에 서 있다
고양이 소리로 허세를 부리며
새끼를 지켜내던 어미 여치처럼
젊은 날 아버지 술 한 잔엔
허세 한 접시도 따라 나왔다
이젠 삶의 전장에서 돌아와
갑옷도 벗고
틀니도 빼고
돌아온 시간 줄기 마냥
굽어진 허리는 말한다
그 또한 살아내는 무기였다고
그 또한 지켜내는 사랑이었다고
오래 된 사랑이 등 뒤에 멀리 서 있다.
편지
토닥 토닥
등을 두드리는 소리
나를 위로하며
비가 온다
주룩 주룩
눈물 흘리는 소리
내 얼굴 어루만지며
비도 운다
비가 떠난 자리
따끔 따금
햇볕 파스 한 장
등짝에 붙었다
우표 없는 엄마편지
풀이 외치다
난, 그저
같이 살고 싶었을 뿐이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호미자루 든 늙은 농부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오싹 한기를 느낀 나는
친구 옆구리로 얼굴을
묻었지만
사내는 끝내 나를 찾아내
머리털부터 발끝까지
난도질을 했다
이름 모르고 태어난 게
이렇게 큰 죄일 줄이야
나도 같은 자식이거늘
어찌 이리도 편애한단 말인가]
나, 다음
생엔 이름 석 자 알리리라
그리고 사내에게 외치리라
난 잡초가 아니라고
내 성씨는 풀 씨라고
파
아직은 혼자 설 수 없어요
당신 가슴에 기대게 해 주세요
처음부터 바로 서라 하지마세요
저에게도 시간을 주세요
텅 빈 잎을 기둥삼아
한껏 부푼 가슴으로
까맣게 익은 꿈을 품고
서슬 푸르게 일어서는 날
매운 칼바람도
비켜 갈 거예요
보자기
정겨운 요술쟁이 보자기는
손자 줄 떡을 가슴팍에 숨기고
딸네 줄 호박도 품고 오지요
폼 내는 멋쟁이 보자기는
할매 몸빼 허리춤에 매달렸다가
어느 날은 엄마 얼굴 감싸고 오지요
백화점 진열장 화려한 포장지
명품 백 품고 미모 뽐내다가
쓰레기통으로 사라질 때
이쁜 호박이 스카프 두르듯
날씬한 가지가 허리띠 매듯
울 보자기는 할매가 되고
엄마가 되어 옵니다
성명 : 채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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