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by 김대갑 posted Nov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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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돌이켜 보면 우리는 마당을 잘 쓸지 못했다.

낙엽이 켜켜이 쌓인 교정에서

코발트블루의 물결이 넘실대는 바닷가에서

우리는 늘 주변을 맴돌며 이제나 저제나 망설였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사랑을 할 줄 몰랐다.

흰 여울이 진 강가에서

황금색 놀이 비치는 봉래산에서

그리움에 사무치는 밤을 사랑할 줄 몰랐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친구를 잘 알지 못했다.

그의 다친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의 아픔을 어루만질 줄 몰랐다.

친구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고

친구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임을

잘 알지 못했다.

 

또 돌이켜 보면 우리는 생각을 몰랐다.

부용화 핀 들녘을 가로지르며

뚝뚝 떨어지는 상념과 사색의 언저리를

매만질 줄 몰랐다.

 

세월의 저문 강을 지나

해동 원두에 나래를 폈던

천년 예지의 새를 기억하며

우리는 소박한 마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다.

 

찬바람이 소쇄하게 몰아치고

회오리 하나 둘 품 안에 들어오는 이 계절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념하는 것일까.

그건 어쩌면 읽어버린 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고

또 그건 어쩌면 방황과 고통의 나날을 반추하는

마음일 것이다.

 

벗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이들.

그리운 풍경 속에서 아련히 떠오르던 얼굴들.

칼바람 몰아치고 북풍한설 그칠 줄 몰라도

마음속 어딘가에 두근거리며 남아 있던 얼굴들.

 

교정에 봄비가 우련하게 내릴 때

퇴락한 낙엽이 운동장 가녘을 돌아다닐 때

우리는 먼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지

그때 되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검정 교복을 매만지며 궁금해 했다.

 

우리는 그동안 길 떠난 보헤미안이었다.

무거워진 눈을 하늘로 보내며

순수하고 소박했던 시절의 향수를

어느덧 이기심으로 물들이며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을 애써 외면했다

 

이제 우리는 알바트로스가 되어야 한다.

우아한 몸짓으로 푸른 창공을 나는 알바트로스는

30년 이상의 세월을 살아간다.

그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펴며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웅비의 새처럼

해동 원두의 하늘을 지나

2의 비행을, 2의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웠던 사람들, 그리웠던 인연들.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던 수필의 언어처럼

그리워하면서도 한 번 만나고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서로 아니 만나 살기도 했던 사람들.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인연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벗들의 달라진 모습과 달라진 환경을 진지하게 인정하고

그립고 아득한 인연의 강을 건너

뜨겁게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소중하게 잡아 보자. 사랑하는 벗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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