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갓길이 나전칠기 되어있었죠
자갯빛 날개를 접히지 않게 벗어두고
나비들이 검은 도로 위에
미동 없이 누워서.
마지막 순간, 저항도 없었던 듯
어찌나 곱게 누워있던 지요
방금 전, 패랭이 꽃밭 위에서
한미한 팔다리로 제천의식 벌이며
버겁도록 춤을 추던
그 녀석들이.
춤추다 휘날리다 노닐다 휘몰리다
꼬리도 없는 게 어찌나 친근하게
흔들며 다가오던 지요
한적한 나비들의 천국이었고 보는 눈 없어
바보웃음 지어 화답했던
그 표정을 껴안고
누워 있었어요.
팔다리에 힘도 없는 것들이
목숨보다 날개가 더 무거웠나
앉기보단 날기가 편하다며
슬픔과 기쁨마저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며
춤추다 휘날리다 노닐다 휘몰리다가……
꽃밭 벗어나
누워 있었죠
군무 추던 모습 그대로
검은 도로 위에 무더기로
나전칠기 도로 수놓으며
무더기로, 꽃밭처럼
누워 있었어요.
꿈에서 죽다
울렁이는 별들 귓전에 철렁이고
살았다 죽었다 하는 시체들로
연주회를 여는 창궁(蒼穹) 아래
칠흑의 초대장
좁은 건물 방 안에서
네 명의 남자가 나를 죽인다
날 선 식칼 지나간 목이 눈물만큼이나 울컥이는 동안
나는 눈 가죽을 하늘로 열고서
이 현장을 목격한 꼬마를 찾곤
그녀가 주인 잃은 복수심을 염殮해주리라
안심하며 죽었지
그러나 복수심 없는 죽음
주검은 악기가 되고
수의가 선율을 짜고
악당은 악사가 되고
울렁이는 별들은 귓전에 철렁이고
살았다 죽었다 하는 시체들로
연주회를 여는 창궁 아래
살해자가 나로 연주하는
나의 진혼곡을 들으며
세상은
얼어붙은 불꽃은
시야의 사각에서 쪼닥거리다 꺼져 간다
설사 꿈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다 용서가 되니
내가 나라는 기억도 없을 테니
꿈이라는 기억만 잃지 않길 바라리
한동안 내 목숨을 가지고 즐거워 해도
괜찮다, 우리 나비들은
바위를 사랑한 생명
검은 도로를 두 날개로 껴안고 누워
다시 일어나지 않으니
그러나 세상은 또 다른 영원을
어느 착각 많은 일생으로 구가해보기 위해
코골음 소리를 콧노래 소리로
콧노래 소리를 노랫소리로 바꾸어 갈지니
내가 아예 돌아버린 게 아니라면,
어젯밤 확실히 죽은 그 자는
만년설 아래 덮인 채 망각의 쇄빙선만
기다려야 하겠지
구멍난 돌담의 가슴
할멍 되멍 수과 제주방언 들린다
정겨운 실수로 버무려진
서울말 사이로
넘실대는 지평선의 푸른 바다 보인다
헐겁게 쌓아 올린 돌담들
가슴 사이로
돌담 허물어진 곳이면 어디에나
코스모스
땅바닥엔 으깨진 과일 알이
푸른 등껍질의 풍뎅이 같고
돌담 옆에는 장총이 놓여있다
육지를 접었다 펴는 해안선 그 안 5KM
이 영역을 벗어난 곳에는 드문드문 발굴된 고분유적처럼
파리가 삼삼오오 모여 우글거렸다
그 아래엔 꽃잎이 깔려있다
할멍 되멍 수과 제주방언 들렸다
살벌히 좁혀오는
서북 서울 방언 앞으로
간밤엔 억장이 무너지는 돌담의
가슴 틈새로,
군인 하나가 총부리를 집어넣어
헝겁스레 두고 간 무기로 저항시를 쓰던,
꽃잎의 뒷머리를
구멍냈다
서울골목길 프레스코
이태원 시멘트능선 선술집서 내 눈동자처럼 주홍등이 밝으면
바다가 없는 서울은 해변을 그리워한다.
허면 앉은뱅이의 발돋움
얌전한 서울 사람들은 높이경쟁 할 천장을 확장공사 하느라
별자리 벽화를 그들 꿈 속 해외여행지 이국 하늘로 이전시키고
하룻밤내 눈물 적신 소녀들의 매끈한 종다리가 학교로 가면
돌 같은 아토피 살껍질을 꿈틀거려 긁으며
아버지와 장년 사이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시원한 표정
길길이 날뛰는 전철의 코끝 스치는 빌딩의 뿌리가 지하철 갱도에선
눈물 뿌연 전조등과의 사랑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슬퍼하고
불륜의 바람 부는 신촌의 모텔촌 아침에 살기저귀 풀어헤친
지친 아기들이 어린왕자의 마음 속 외로움 빛내며 출근길을 나선다
내 심장 횃불처럼 들고 가버린 의사 공무원 변호사 판검사 사장님들이
늦지 않게 기름칠을 더해 활화를 일으키면 나는
내 인생은 내 인생 굳이 낭비할게 뭐냐, 어깨 으쓱하면서도
따가워서 따가워서 심장 찾아 뒤따라 가고
어떤 아저씨
알래스카엔 얼어있는 파도가 있다지
남산엔 등산하다 멎어있는 대리석 녀석들의 기계파도가 있지
난 그래도 이곳이 좋아
돌 갈아 깎아 굳힌 주택가의 홍수를 멀리서 지켜보면
한 번만 애가 되어볼까?
저 동서남북 쏟아져가고 있는 집집들의 옥상만 밟아 뛰면서
한 번만 저 먼 인천 계양산 정상까지 가보았으면
송신탑이랍시고 이쑤시개 마냥 생긴 뾰족이를 뽑아 보았으면
뛰는 게 아니라 낮게 날아 내 삶의 터전이라는 이곳을
내 손바닥으로 내 걸음걸이로
덮어보고 싶었다
대입고시만 끝나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
그러나 올가미가 있었다
교실 책상으로, 은빛동전 오락실 속 쓸어 넣어가며 끌려 다니다가
PC방 모니터로 학원 강의실로
기다리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끌려 다니는 중이었지
연병장 자갈밭 칼날 위에 뉘여 짱짱한 햇빛 도마에 눌려
정신이 나가는 중이었지
그렇게 해내면 나는 두 가지
잘 길들여진 훌륭한 소모품, 아니면 폐인
어떤 아이
엄마, 아까 저 다리 하나 부러진 아저씨가 젓가락 춤을 잘 추던데
왜 가려버린 거에요, 사람들이, 백화점 바깥으로 왜 숨겨버린 거에요
왜 죽여버린 거에요 엄마
아이 입에 젖가슴을 물려주며
-세상은 깔끔하고 깨끗해야지
-엄마 가슴처럼 미끈해야지
-눈물은 남들이 흘려주는 거겠지
엄마, 왜 가슴에서 플라스틱 냄새가 나요
-잘만 가리면 아무도 알 수 없게 한 시름 처리하기는 쉬운 일이지
-눈물은 남들이 흘려주겠지
피곤에 지친 이마 독 오른 뾰루지 가리는 화장하는 인생, 수돗물로
조준된 아름다움 상연하던 여배우들의 자기방 들어온 한숨소리, 바람으로
얼굴 낯 익은 뇌병변자의 절박한 발작, 그 손짓, 그림자로
흘려 보내면,
자기 부정의 연속, 서투름을 한사코 숨기고만 있다가
그렇게 몇 십 년 흘려 보내고 흘려 보내면
무엇이 남을까, 봇물 터진 입을 감싸는 무정한 손
그 틈 사이 주울 수 없이 쏟아지는 구슬, 구슬.
골목, 서울
회색잉크로 사각형 몇 개를 겹쳐 그린 다음
초록색잉크로 사다리 몇 개를 그려 사이 사이를 연결하면 나의 동네가 되지
골목길엔 영롱하고 푸르게 멈춘 시간을 부여잡고 우는,
깨진 소주병.
그 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달이 뜬다
눈먼 이들의 색칠공부
튀는 색을 두려워하는 훈련 받고 거리는 아무리 오만 겉치장을 해도
우중충한 안개의 색깔,
그러나 그 색깔 그대로 무언가 속을 짠하게 끓게 만드는.
조곤조곤 속삭이며 살아가는 애인들의 꿋꿋한 발걸음
뉴스에서 명절처럼 떠들어대는 달 밝은 날
그 한 자락을 잡아보려 옥상으로 거리로 모여 나온 인파의
합쳐진 두 손에는 달빛 수천 조각을 폰카메라 속 고이 접어넣는 소망
그걸 보면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직도 서투른 구석이 있다, 그것까지 화장기술 개발해
내 연민의 눈까지 다 삼켜버릴 때까지는 그래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밤마다 별빛을 땅으로 끌어 모아두고
노을 속에 책임 없는 주검을 몰래 묻고
그 위로 자식 찾아 헤매는 부모들 환란시키는
달빛의 용광로
검불만 못한 소리를 재잘거리는 사람들
그들의 풍속을 감싸며 자신을 낮춘 한껏 웃음
그러나 곧 한 귀로 흘려버리고야 마는,
하류생활 밑의 숭고
이태원 시멘트능선 선술집서 내 눈동자처럼 주홍등이 밝으면
바다가 없는 서울은 해변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저녁 불빛 별방개를 은하수로 바꾸어 흐르며
어둠과 바람은 여기를 밤바다 같아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