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공모-시부문-죄 외 4편

by susia1223 posted Dec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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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마음을 훔치는 너는

햇빛은 나를 쪼고

가슴은 달아오를진대

참 아름답다

눈물을 훔치는 너는


내가 널 좋아한다는데

어떡하냐, 승아야

모두가 날 말릴진대

숨지마라, 승아야


내가 무서우냐

사랑이 두려웁냐


아니다

너는,

그저 아름다운게 죄다

나는,

미래가 없는게 죄다 


사랑한다

타인의 경계를 허무는 너는

어른이 되어 생긴 허물을 벗긴다

난 사랑한다

네 알듯 모를 듯한 웃음의 허무를



사랑이라고?

 

누구에게나처럼 사랑은 시의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왜? 자신의 사랑만큼은 특별하다고 증명하고 싶어서?

오히려 나는 너를 알고 천박해지며 순박해졌는데

이룰 생각이 없다

하필이면 결과주의를 싫어하는 융통성없는 나라서

대신 너에 대한 감정을 낱낱이 기록해주마

아무도 내 시를 읽어주지 않을테니

너는 그 때처럼 내게 말을 가끔 걸어라

이제는 피곤하지않으냐

인사하고 알아가고 만지고 확인하고 

헤어질지 결혼할지 결론내는 무한반복 행위

누가 그랬는가

사랑은 상처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멋드러지게 정의하지마라

나는 네게 상처받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너를 그리리라


공연장에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 노랫말을 타고 가자

보통 살아있지도 않은 자들이 또박또박 기계처럼 뱉는게 가사

소동을 일으켜라 나는 널 부를 수 있다


넌 알아듣는다, 눈빛이 흔들린다, 날 바라본다

단 1초라도 망설였는가

회색피부를 지금 벗겨내야한다고

나는 다시 외친다, 실컷 웃는다, 먼저 벗겼다


모두가 떠난 무대 위는 허무하게도 차갑다

관객석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날 올려다 볼 뿐인 너

그렇게 회색인 너와 벗겨진 나, 우리 둘만 남아있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던 가을을 배웅하며 

 


떠나려는 버스를 쫓아간 발자국 때문에

낙엽들은 조각난 보도블럭에 새겨졌다

 

사람들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할 것이다

은하수가 보이는

맨 앞 좌석에 앉았으니까

 

불투명 수채화가 그려진 밤을 본다

느릿느릿 우리가 아름답게 이별하는 그림 속에서

와이퍼는 눈물 닦는 손짓에 여념 없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던 가을을 배웅하고 들어가는 길

모르는 아주머니가 간곡히 쥐어준 광고전단지를

연애편지처럼 읽어본다

 

세상에 필요 없는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대와 내가 사랑하게 되는 방법이 적힌 곳은 없다



버려진 시


서슬퍼런 달을

등지고 서있던 그는

아기 재우듯 

불타는 종이를 살폈다

 

이미 반쯤 탄 종이는

아직도 암호가 그득해서

이글대는 열꽃과 함께

까만머리 흔들어 춤추었다

 

동네사람들이 말했다

저 사람 글에 홀렸다고

 

그래도 걱정되어 다가가니

그을린 알콜향이 바람에 묻어난다

 

뭐를 태우는 거요?

그마저 타버릴까봐

나는 물어야했다

 

버려진 시들이요

죄진 자의 표정같이

그가 대답해줬다

 

그 후로 나는 종종 말없이

그 곁을 우두커니 서서는,

 

지켜보았다

 

아름다운 비극으로 사라질

어느 주인공의 짧은 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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