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만이
창문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방 속에
나 혼자 고립된 줄로만 알았다
혼자이기에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이곳이 외로웠고
혼자이기에 피해주지 않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문득 어깨를 쓰다듬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보니
나와 같은 어둠 속 은은한 미소를 비추는 당신이 있다
왜 몰랐을까
어둠 속 유일히 따스했던 어깨를.
처음부터 닿아있던 그 손길을.
그랬다,
먹구름 가득한 내 세상에 그대는 바람을 주었다
이미 그대의 세상이 되어버린
아니 어쩌면 태초부터 당신의 것이었을
나의 세상이라 일컬었던 그 곳엔
제자리를 찾은 냥 한줄기 빛이 서려왔다
내가 잊고 살아왔던.
그랬다,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세상 속
주머니에 그 빗물 포기 않고 담아보려 해도 매듭을 지을 줄 몰라
하염없이 쏟아지는 어린아이의 눈물을 위해
당신은,
당신은 매듭짓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대는 나의 모든 슬픔을 알았고
그대는 나의 모든 빈틈을 채웠고
그대의 다함없는 사랑을 가르쳤다.
그대는 나의 선생이자 바람이었고
따스함이자 사랑이었다.
사랑
나에게 달려들까 두려우면서도
우리와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 비둘기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추워서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싶으면서도
고고히 몽우리를 맺히며 봄을 기다리는 그 나무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높은 건물 사이 안보이지 않을까 포기하려 하면서도
고개 빼꼼 내밀어 인사하는 그 구름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욕하며 음담패설을 즐거워하는 저곳에 가야하나 싶으면서도
사이사이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순수를 묻어내는 그 아이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사랑, 슬픔, 화, 허탈, 가난 그 모든 모습을 무(無)로 숨기려는 그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그’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말로하기보단 행함으로
서로 사랑의 말을 나누며 사이가 좋던 우리는
저 달님도 부러워하더라
서로의 존재가 익숙함이 되어버려
일상이 되어버린 사랑의 마음을 고이 담아놓기로만 해
달달한 눈빛과 따스한 손은 그대로였지만,
어딘가 이상해, 나의 억측인걸까
의심과 자책이 쌓여 널 바라볼 수 없게 돼
너의 그 눈빛은 날 향한 진심인걸까
꽃같이 아름답던 이 사랑도 결국엔 시든거야
잎사귀 빼꼼 내민 초록빛 무언가의 이름이 꽃임을 알지 못했고
내게 보이지 않던 너의 마음이 사랑인 것을 알지 못했어
헌정시
오늘도 일어나선
어김없이 너와의 책을 폈어.
이제는 너무 닳아
꾸불꾸불 해진
행복한 그 페이지를 넘어가다
어김없이 그 기억 앞에서 멈추게 돼.
닿을 수 없는 만질 수도 없는
너에게 달려가 인사할 순 없을까
알면서도 바뀌지 않는데도
너에게 부탁해 너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달라고.
그 책을 너무 많이 봐
모든 페이지는 헤져있는 듯 해.
근데 그거 아니
우리의 그 시간 이후로 펴보지 않은 그 페이지는
나의 눈물로 비틀어진 채로 남겨져 있어.
이젠
닿을 수 없는 만질 수도 없는
너에게 다가가 안길 수 없는 걸까
비참해도, 무너질 걸 알아도
너에게 부탁해 너와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달라고.
동백꽃 : 웃음을 품은 눈
봄이 인사하나.
내 가슴까지 차오르던 눈은
붉은 빛을 내며 사라졌다.
겨울도 잠시 힘들었나봐
그래, 너도 쉬어야지.
향긋한 따스함에 취해
눈물은 외투와 장롱 깊이 넣어두려던 쯤,
차가운 눈이 나를 덮여와
언제 그랬냐듯이
인사를 건네며...
그 순간, 나를 가득 채운
노란 칼을 품은 붉은 빛 동백꽃.
거짓된 따스함으로
너는 나를 속였나.
하얀 그 얼굴
붉은 입가에 웃음이 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