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통(後痛)
서 혜리
왼쪽 정강이가 욱씬거린다.
조금, 아니 조금보다 조금만치 더
늦게 온 성장통
복숭아뼈보다 한 뼘 반쯤 위
부어오른 그 곳을 큰 손으로 어루만진다.
굳은 살이 그득이 자리잡은 왼편,
나는 그 하퇴(下腿)가 가여웠다.
어느 길 한복판,
늦은 성장통에, 아찔한 통증에
절뚝거리며 차가운 골목길에 다리를 뉘였다.
나는 가여웠다. ‘나’가 가여웠다.
그런데
오른편은 이를 모른다.
같은 다리인데, 그 고통을 모른다.
하통(下痛)이 가시기도 전에 그 큰 길을 다시 저벅인다.
새벽밤 내린 이슬비에 자작이는 길바닥 위로
오른편에 맞게 애써 절뚝이는 왼쪽 다리
나는 그 다리가 서럽다.
저벅저벅-
웅덩이가 서럽다.
초연한 듯 처연하게 걷는
‘나’가 슬프다.
낙엽(落葉)
서 혜리
언젠가 나는 본 적이 있었다.
누렇게 변해가며 힘없이 시들어가던 너의 그 육신을
제 몸 하나 부축할 힘없이 차가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그 가련한 몸을
이미 온전치도 못한 너를 밟고 또 밟아 산산조각 냈던 비열한 발걸음들을
너가 떠나간 그 자리에는 몇 줌 바람만이 스며들다가
또 다른 우매하고 어린 것들의 생명들로 가득 채워지겠지
그것만이 너의 결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기억한다.
고매하게 제 몸을 불태우며, 그 한산했던 거리를 가득 채우던
너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모든 계절을 온몸가득 받아들던, 꿋꿋했던 너의 모습들을
가식적인 것들로 덮였던 것들을 조용히 색칠해주던 순수했던 그 날의 너를
비참하게 부서진 너를, 나는 다시 가득 주워 담는다.
너의 모든 순간을 나는 사랑했으므로.
봄의 메아리
서 혜리
내 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대가 내게 그 날의 봄보다 더 생그러이 미소지었을 때
내게 끝났던 봄, 무더웠던 여름의 서막은 역행하듯 닫혔고
다시 내 꿈은 피어났다.
나의 봄의 마지막 장에서 너는 싹을 틔우고
나의 메마른 마음 속, 너는 깊게 뿌리내리며 굳게 자리 잡았다.
그 때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불면증은···.
겨우 들었던 쪽잠마저도 그대에겐 용인되지 못했다.
간질거리게 맴돌며 너는 내게 마음을 보챘고,
희미해져가던, 부서져가던 나는 다시 제 색을 띄워가고 있었다.
그 봄은 언젠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나를 찌를 것임을 알았음에도
나는 멈추지 못했고, 그것들은 내 안을 더욱 헤집어나갔다.
그리고 널 놓치려는 그 어느 순간
검었던 내 마음 속은 이미 너로 구석구석 물들어
끝끝내 탈색되지 못했다.
달콤하고 따스한 봄바람이 내 볼을 스쳐지나간다.
그러나 그 봄날의 계절을 떠나보낸 내게는 어쩐지 스산하다.
그 바람은 또 다시를 나를 강하게 뒤흔들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또 다시 도태될 나의 봄이여
아- 내 계절을 멈추어다오
몽상(夢想)
서 혜리
잠들지 말아라
괴로움을 베고,
아무개야, 부디 잠들지 말거라
꿈은 그저 꿈일 뿐
현실 속 너는 다르다.
가엾고도 가여운 아무개야
달콤한 꿈에 취하지 말아라
눈을 뜨면
너는 그저 너일 뿐
꿈속의 너에 결코 취하지 말거라
춘우(春雨)
서 혜리
내게는 유희였던 그 조각들이 깨지고 날을 세워 그대를 할퀴었고,
봄비에 스쳐 덧난 그대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못한 까닭은
젖어버린 채 그대 마음속을 정처 없이 떠돌던 그때의 그 소녀 때문이었다.
문득 그랬다.
나는 언제부터 그대에게 슬픔이었던가
밤공기가 찼으나 뜨겁게 안아주지 못했다.
아니, 안아줄 수가 없었다.
그때의 그대에게서 돋아난 가시들을 나는 감내할 수 없었고
또 그 날의 그 밤공기보다도 그대는 더욱 차가왔으므로
어느 새벽, 비가 그친 후 메말라버린 그대의 가슴속
아직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그 여인은 버선발로 내쫓긴다.
비가 내린 그 새벽은 유달리도 춥고,
얼어버린 두 발은 그대 마음 속, 어느 한 켠에도 자리 잡지 못하며
그 주위만을 서성이며 맴돌 그 뿐이다.
아- 나는 언제부터 그대에게 고통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개이고 꽃은 피지만은
다시 봄비는 내리며, 젖어버린 나는 여전히 그대에게 목마르다.
서 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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