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나보다
온 몸 구석구석을 알뜰히 헤집고 다니던
바람 녀석이 잠잠해진 걸 보니 봄이 오나보다.
지나가는 길고양이 하나 보이지 않던 집 앞 공원에
하나 둘 안부를 묻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걸 보니 봄이 오나보다.
눈보라의 거친 인사에 맞서 꽁꽁 웅크렸던 몸이
은행에서 갓 받은 새해 지폐처럼 빳빳이 펴진 걸 보니 봄이 오나보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빙판길의 구애에 못이겨 생긴
영광의 상처가 어느덧 흐려진 걸 보니 봄이 오나보다.
아직 유치원티를 못 벗은 여덟 살 풋내기들이
오른쪽엔 엄마손, 왼쪽엔 새 책가방을 꼭 쥐고 재잘거리는 걸 보니 봄이 오나보다.
세탁소 앞 옷걸이에서 아웅다웅 올 겨울 모험담을 나누며
계절잠이 들 채비를 하는 겉옷들을 보니 봄이 오나보다.
새로운 봄은 소리도 없이 저녁 노을처럼 스며들고 있나보다.
희미한 봄향기를 따라가다보니 내 옆에 벌써 봄이 와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