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15차 창작콘테스트 시부문 응모-치명적 유혹 외 4편

by 닐리리요 posted Jan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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致命的 誘惑  

어둠이 자욱하다

2B연필심보다 까만 어둠은

아스팔트와 같은 피부색이다

도로는 위험하니

야간에 특히 조심할 일이다

파란 불은 바쁜 차들의 몫

붉은 빛은 어둠이 다닐 차례다

밤의 보호색이라면

하얀 담배연기가 인상적이나

신호등이 흡연할 수는 없다

붉은 목소리가 속삭인다

고압전류의 자기장에 묶인 듯

순간 거룩한 계시에 사로잡힌다

너는 너무 시키는 대로 살았지

감히 선을 넘을 수 있겠니

나를 가질 수 있겠니 너는

어리석은 소시민의 질주는

붉은 선을 넘는 것이고

약속을 깨는 것이다

부서진 약속은 사람을 찌르고

어둠이 검은 피를 흘리리라

일말의 양심이 브레이크를 밟는데

술꾼들이 남긴 잔에 빠졌던 달이

비틀대며 신나게 달린다

신호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북구 중앙대로 570에서

      


 

그럭저럭  

아주 못 볼 줄 알았더라면

한 번만 더 봐둘걸 그랬나

깊은 밤을 깨워 마주앉아

추억의 사진첩을 조심조심

몰래 훔쳐라도보듯이

해묵은 얘기들 곱씹어라

이럴걸 차라리 저럴걸

가엾은 궁리는 길고

짧은 밤은 혼자 늙어가노라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흔한 게 시간으로 알았더니

시간의 모래알들은

금새 먼지가 되었더라

이별이 아직은

저만치 있을 때라도

마치 헤어짐이 목전인 듯

힘껏 부동켜안고서

하나가 되지 아니 하였나

철없는 입은 게을러

따시고 고마운 말씨는

무엇 하러 아꼈을까

상념이 달빛을 의지하여

천리 밖을 서성이누나


 

어쩌면 차라리 잘 되었어

그대는 이제 없어도

그대라는 집은 남았으니

눈 속에 깃든 그대는

거울에 비춰 되새겨볼까

못 다한 애잔한 연가는

버들잎 따서 강물에 띄우고

달 밝은 밤에 꽃 피거든

달빛을 그대 삼아

춤으로 엉키어도 좋겠네

부르지도 못 하고 이고지고

목숨 부지하기 힘들었던

푸르고 시린 이름있으니

나이도 잊고 때때로

이제는 쉼터가 되어라


 

젊은 날에 보내길 잘했지

사랑이야 피다가 말았지만

할 말은 남겨두길 잘했어

아직도 모닥불이 타잖아

이래도 아쉽고

저래도 사무치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그 나름대로

그러저럭 살고지고

구멍 없는 가슴이 있더냐

   

     


想像  

지식은 땀에서 캐는 것

상상은 다분히 유전적이구나

상상의 나래가 크던 작던

상상하는 고로 깨어있노라

마음의 창이 상상이니

마음이 눈을 닫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리

희망은 산소같은 것

밝은 생각은 푸르거니

푸른 가지를 꺾으면

영혼은 숨이 막힐지라

빨간 크레파스를 불러와

빨간 머리의 앤을 상상하노라

고로 나는 숨쉬고 있노라

옆에 있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이 더 뜨겁나니

열렬히 상상하노라 앤 셜리1)

   

*주 1)소설 빨간 머리 앤의 주인공



 

편지

편지를 써야겠어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과

편지가 정삼각형으로 맞물려

타인의 눈에서라도

자기를 만나야겠어요

종이는 필요 없구요

어디인들 꾹꾹 눌러

마음을 복사해 붙일까요

양지바른 돌 담 아래

햇살을 가지런히

침 발라 대자보 붙이고

다 함께 부르기 편한

유행가 한 소절 적어야겠어요

시간의 여행자

작사 작곡이라 흔적을 남길까요

시계 방향으로 빙빙

자꾸 돌아가는 바람에

글을 쓸 수 없어요

마음이 빛의 속도로

지구를 돌고 돕니다

따뜻한 향기의 정원으로

편지를 꽃 피우고 싶은데

방어적인 자세로 자꾸만

붉은 쉼표를 찍게 됩니다



나비 할매  

자칫 쑥대밭이 될 긴 머리

할매는 참빗으로 잘 타일러서

가지런히 뉘여 비녀를 잠그지요

더듬이를 모두 묶어두니

표정은 정지된 채 굳고

할매는 말도 쉽게 뱉지 못 하고

조심스레 방생하여 주지요

지면과의 마찰을 염려하여

거의 사뿐 사뿐 떠다니시던

우리 할매는 나비 할매

울어매 세상 버렸다고

아버지 통곡으로 칭칭 감아

수의 입은 할매가 고치네요

비녀를 빼자 슬그머니

더듬이들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할매 얼굴도 활짝 피어나네요

호랑이보다 사납던 할배도

그보다 더 포악한 세상도 보냈으니

할매는 이제 편한 잠에 빠져서

무수한 감각의 세계와

신기한 표정들의 나라를

나비가 되어 훨훨 꿈 꾸겠네요

울 할매 한 숨 푹 주무시고

겨울을 밀어내느라 진땀 빼는

잔디 위로 마실 나오시면

그 때는 봄이 와도 되겠지요

나폴나폴 날개짓에

꿈만 같은 세월일랑은

아지랭이에 씻기워가겠지요

할매요 나비요 나비 할매요

 



1.성명:정덕길

2.이메일 주소:duke_jung@hotmail.com

3.휴대폰:010-9070-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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