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리다
난생 처음으로 일출을 경험했던 기억이
첫술의 안주로 남아 밤을 비추었다.
애늙은이 친구가 충고해줬었지
이 세상 모든 건 첫 경험이 중요하다고
처음 꿨던 꿈의 신작로를 나는 오늘도 걸었다.
미진하게 자라나는 머리카락의 길이를 측정하며
언제 미래를 살아보나 하고 한탄했던 기억도 나지만
이제는 명필의 붓처럼 자라있는 나의 머리카락은
온 신작로를 감싸고 있다.
누군가가 말했다.
머리카락이 과도하게 길었다싶으면 잘라야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면
더더욱 잘라야 한다.
머리카락이 없을 때의 첫 경험으로 돌아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최초의 일출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모든 건 둥그런 구의 세상에도 끝이 있기 때문
나는 다시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가 다시 깨어날 날을
기다리기를 고대하지만
그래도 잠에서 깨어나서 직접 느껴보는 일출은
결국엔 최초가 아니었지.
모든 걸 원점으로 회귀하며
첫 경험부터 다시 시작되는 꿈을 꿨었다.
다만 꿈은 꿈뿐인 이야기
이상적이게도 게임은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지만
나는 제자리
한 가지 달라진 것은 짧아진 나의 머리카락뿐이었다.
프롤로그
미처 아이의 탄생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등줄기에 남아있는 건 오직 새까만 거머리 뿐
날고기 냄새가 나는 순수하고 더러운 능력마저 앗아간다.
너는 의지를 부인하고 말았어. 그 아이에게 축복 따위 주지 못했어.
욕망의 부산물로 이루어진 양수에 젖은
그 아이의 발바닥에 확신의 키스라도 해준 적 있어?
제아무리 발버둥 치며 죄책감에 오열 해봐도
사람들은 이미 그 아이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름 없는 묘지에는 언제나 버려진 물들이 스며들고 있다.
단 3초간의 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릴
유성 같은 욕구였었다.
치기 어린 소년 소녀의 아리따움에 그 둘은 서로와 교감하고 통하다가
결국에는 서로의 목을 옥죄고 깨물어 부순다.
원치 않던 핏줄이 생긴다는 건 더 이상 신뢰의 붉은 실에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틀려먹은 것.
이제 프롤로그는 지워졌다.
더 이상 서사의 의미부여, 동기부여는 사라졌고
앞으로의 광활한 이야기가 예정 되어 있던 원고는
소각장에 의해 불타 하늘로 올라갔다.
이제 그 이야기의 서론이 무엇인지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야기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기억하지 못 한다.
심장은 바다에 가라앉고
나는 잊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따뜻한 안식처만을 바라보는 건 무엇이 됐든
결국 사치로 남게 되지요.
당신의 친절을 잊고 싶고
이제 그만 놓는 법을 깨우치게 하고 싶어요.
어젯밤 우리가 미래를 위해 선택했던
배는 이미 침몰해 버렸답니다.
목표만을 위해 거친 호흡을 빼냈다 주워 담았다 하는
순환작업
이 마라톤 같은 여정은 그만 끝을 냅시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없고
잘 익은 사과 빛이 감돌던 그 따스한 볼을 쓰다듬을 수 없어요.
먼저 떠나간 순교자인 당신은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해요.
되새겨 보면 이 세상은 오로지 허무주의적 입자만 남아있군요.
심장 있는 사람들은 매일을 끝으로
사라져 갑니다.
이제 놓아 줄 차례입니다.
이 상자에 들어 있는
당신의 뛰지 않을 차가운 심장을.
이것을 바닥이 보이지 않은 나락의 중심에 바치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꿈이 없는 영원한 세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위해서…
정신공황
초롱아귀 한 쌍이
심해에 떨어진 텔레비전을 감상하고 있다.
빛도 새어 들어오지 않는 일만 미터의 해구 속에서
오전과 오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이제 남은 희망은 등불을 켜야 보일 수 있는
웃음이란 조작된 신경 밖에 없어.
어떤 위대한
정치학자도, 미래학자도, 미신 섞인 예언가도
미래를 점칠 수 없는 곳에서도
매체가 존재하고 왜곡된 섹슈얼리티, 마약성 쾌락, 그리고
치킨 코스프레를 하는 속까지 시커멓게 일그러진
성모 마리아가 존재한다.
텔레비전 속에는 지느러미가 달린
과거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톰과 제리가
이리저리 날뛰고 있고 초롱아귀들은
그것을 머릿속에 받아들이고
지워지지 않는 물감으로 쓱쓱 색칠한다.
희망이란 이름의 불빛이 언젠가 생명이 위태로워져.
점멸과 소멸을 맞을 때 까지야.
어두운 심해 속을 약하게나마 비쳐주는
허언과, 위선의 미디어가 내뿜는 페로몬에 취하고 있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지금 여기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아스팔트 아래
언제부터인가 잊혀 졌지.
새 아스팔트에 묻힌 너의 발자국
아침이 그려진 도화지가 문득
사라진 것을
너는 마른 심연을 보고 깨닫는다.
그것은 잠들어있다.
발자취는 꿈을 꾸고 있지
밥을 먹고, 별을 보고, 요지경만한 세계도 손에 쥐어본다.
그런데 너의 민낯은 하수의 삶을 짊어지고 있지.
잠을 깨도 암흑천지 뿐 이라서
너는 다시 꿈으로 돌아가고파
노래, 노래를 부르고
반짝반짝한 아스팔트 도로 위에는
세계의 시민들이 일상을 보낸다.
분주한 인생을 보내느라 묻혀 진 것들을 간과하는 자랑스러운
시민들
아래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확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