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두 글자가 서서히 드러난다
사물
공간 여기저기서 드러나는 형상
책장에 비스듬히 잘려나간 책
일그러진 천정,반쯤 구부러진 초침만 도는
동그라미의 사분의 일만 남은 시계는
시차를 남기며 달린다, 잠시 초침 사라지고
이내 나타나 또 직진으로 돈다, 순간 공간은
층층이 바뀌고 사물 형태 각각이 자유다
형상은 엉켜있기도 하고 독립적이기도 하다
사물의 존재방식이리라
어두움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두 글자가 서서히 감추어지고 있다
사물
공간 도처에서 사물은 꼬리를 물며
숨는다 어둠을 향한 시간은 직선으로
돌며 달리고 사물의 형태는 자유롭다
사물은 서로를 기억하고
기억된 나를 꿈꾼다
이밤,나는
사물과 사랑을 나눈다
<상수리 나무 물새 구렁이>
밤바람 한 점 눈썹을 띄운다
꿈을 꾼 시간 알 수 없다
발아래 바위 하나 감싸고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까만 물새 한 마리 어깨에 앉았고
구렁이 가지를 탄다
잠시 눈 감고 뜬다
순간 꿈 없어지고,
나뭇가지 움켜쥐고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밤공기에 깃털 쭈뼛하고
발아래 구렁이 한마리
달빛 푸른공기 토한다
잠시 눈 감고 뜬다
순간 꿈 없어지고,
까만 가지 미끄러지듯
푸른 거죽 밀어 올리며
나는 지금 여기 서있다
나무 꼭대기 가지에
까만 새 한 마리 앉았다
<거미와 나비가 만난 날>
간 밤에 꿈을 꾸었는데
삶이 아름다웠어!
거미와 나비가
만난 순간이었고
거미줄덧에 붙어
퍼덕이는 나비 날갯짓은
이내 시간 속으로
사라지고 남는 것은
허공속 하이얀 자욱
현과 현사이 화음이
조화로웠어!
간 밤에 꿈을 꾸었는데
죽음이 아름다웠어!
통통한 거미
배에는 그리움이
하이얀 나비
입가엔 미소가
보였어
저마다의 존재
방식이려니
하는데!
나비와 거미가 잠시
만났을 뿐인데
<고독>
장독대 돌쩌귀아래 납작 웅크려 앉은
동고란 얼골의 안경 잠자리
너의 고독 내가 알 수 있을까!
하늘구름 빛 어린 은빛날개가진 너는
천 년의 기다림이냐!
돌담 벽에 걸려있는 보리베개
너의 고독 내가 알 수 있을까!
간 밤 네 님 속곳 가슴에 품고
깊은 사정의 꿈 간직한 너는
푸른 상쳐냐!
먼 옛날부터 푸른 별 담던
토담 우물
너의 고독 내가 알 수 있을까!
달빛 우는 밤이면 몰래, 구렁각시
넘나드는 목마른 우물인 너는
슬픈 신비냐!
고독아!
<시계>
시계는 돌기만 한다
지구가 돈다
시간이 돈다
시간은 직선을 지향하고
자정을 향해서
새벽을 향해서
지구가 움직이며
세계에서 멀어진다
시간은
세계에서 멀어지고
직선으로 늘어진다
벽 위의 동그란 시계가
돌며 직선으로 향한다
사물이 점점점 늘어나고
사물이 점점점 줄어든다
나는 점점점 직선으로
돌며
직선으로 늘어나고
직선으로줄어드며
변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