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미지옥
집은 늘 울고 싶다
발을 헛디딘 순간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야 한다
집은 차츰 수몰해야 한다
개미귀신 아가리에
제 몸을 던지신 어머니
어머니가 흘리신 눈물에
수몰된 집 한 채
개미귀신에게 체액 빨린
어머니의 빈 껍데기가
집 안에 홀로 놓여있다
2.다리
무수한 다리가 삶을 받치고 있다
돈벌레가 다리를 자르고 도망간다
떨어진 다리가 꿈틀 거린다
지금 살아 있는 것은 돈벌레의 다리일까
사람도 저처럼 많은 다리를 달고 있으면
버틸 수 있는 삶이 많아지나
두 다리만으로 버티는 삶이 힘겨워
어젯밤 투신한 여학생의 삶을
다리 몇 족으로 더 받칠 수 있을까
다리가 많다는 것은
자를 수 있는 삶이 많다는 것
홀어머니를 업고 걷는 다리
위급한 환자를 업고 뛰는 다리
다리가 떨어진 자리마다
돈벌레가 허물을 벗고 새 다리가 나오 듯
무수한 다리로 서 있는 사람들
3.개미가 태양을 깨트렸다
풍뎅이가 개미집에 떨어진다
개미는 풍뎅이에게 턱질을 한다
풍뎅이의 방패는 깨질 줄 모른다
하나, 개미는 계속 턱질을 한다
모순의 방패를 깨는 법을
개미는 알고 있는 것인가
그래도 깨지지 않는 방패를 보면
개미는 모르는 게 확실할 터인데
저 가늘한 턱이 한데 모여
악어의 턱은 이루었겠다
방패도 없는 허공에 책장을 넘기며
턱질 조차할 줄 모르는데, 나는
세상이 어둑어둑해 질 때까지
찌를 줄밖에 모르는 너희들은
낮의 방패를 깨버렸구나
거대한 방패의 파편으로
세상을 비추는 달과 별을 만들었구나
4.대화
강물에 낚싯대를 던지면
어느 곳에 줄을 내려도 귀가 된다
찌가 올라올 때마다
물의 파장이 입을 벌린다
그 말을 듣고 낚싯대를 올린다
물은 고요히 말해도 길이 된다
네 속 어딘가 낚싯줄을 내린다
네가 미끼처럼 바늘에 걸려 있다
낚싯대를 들어도 나오지 않는다
찌가 물 위로 올라올 때마다
낚싯대를 가만히 둔다
네 속은 지금 한밤중이다
생각하다가 문득,
여분의 낚싯대에 캐미를 단다
다시 낚싯대를 던진다
불던 바람이 잠잠해진다
모든 낚싯대를 거둔다
5.사슴벌레 뿔은 옆으로 달린다
사슴뿔은 앞으로 달려간다
정녕 패배를 모른다
뿔이 잘려 피고름이 맺혀도
무작정 달리는 중이다
사슴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사슴벌레 뿔은 옆으로 달려간다
무엇을 잡기 위해 감싸기 위해
옆으로 쉴 새 없이 달려간다
앞으로 가는 뿔들이 보지 못한 것을
옆으로 가는 뿔은 볼 수 있다
자동차 유리에 비친 들꽃을 보듯
가만히 멈추어 사슴벌레의 싸움을 보아라
그것은 싸움 아닌 싸움
뿔이 마주 보며 악수를 한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포옹을 한다
앞서가는 구름에 뒤따르던 구름이 뭉치 듯
사슴벌레 뿔은 한없이 잘 뭉쳐진다
뭉쳐진 뿔을 한 곳에 모아 세우면
뿌리 깊은 나무가 된다
창창한 뿔나무 위
어미새가 둥지를 틀었다
성명: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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