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회 창작콘테스트 시공모 / 표훈 외 4편

by 이오 posted Feb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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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훈(表勳)

 

겨우내 물밑서 부르튼

어머니의 작은 손에는

말발굽을 닮은 상처가 새겨져 있었다.

동그랗게 까진 살갗

사이를 가르는 핏빛 줄기.

 

지워지지 않는 흉터는

남아, 다른 이들로 하여금

관찰의 요깃거리를

탐욕스럽게 채워내고는 했다

 

다그닥,

새겨진 상처는

짓누르는 암담한 생활과

시대를 벗어난 굶주림의 고민과

이따금 뒤돌며 슬며시 비추는 조소,

이런 것들로 하여

태어난 차가운 가슴 한 켠.

 

다그닥,

삶의 고단함을 피워낸 상처는

미처 치료할 것도 없었기에

떼어지지 않고 표훈마냥 함께하고 있었다

가난의 고단함을 흘리는 그런,

표훈 한 줄 마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어머니의 손에는 그 말발굽을 닮은 상처가 있었다

 

다그닥,

말이 지르밟은 자국처럼 뵈는 상처는

가녀린 가슴을 또,

깊게 지르밟아내곤 하였다

 

, 이러니

 

명절이 왔다.

 

스리슬쩍 내미는 손에

되돌아오는 것은 멋쩍은 미소 한 다발

 

하얀 바탕위에는 웬일이냐,

포식한 종이가 검은 찌꺼기를 뽑아내고 있었다

하이얀 바탕

뻣뻣한 종이 위에는

숫자가 조금씩 차오르고 있었다

바라보며 바라는 것은 엉덩이 뒤로 붙는

없음.

 

늘어나는 숫자를 좋아하는 이가

개 중에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0,

0 이었다

 

일이나, 이나,

별것 아닌 숫자들은

별것 아닌 채로 조만간 다시 역류하게 될 것

꼬깃해진 용지

한 장, 넘어가길 간절히도 바라는 얼굴에

초조함이 엉겼다

 

, 이러니하게도

나갈 것 없어

바랄 것도 없어야 할 이는

0을 선물해준 이에게 쉼 없이 허리를 숙여댔다

 

참으로

, 이러니 하게도.......

 

 

 

헤세의 떡갈나무

 

떡갈나무여,

너는 더 이상 푸르게 뻗어있질 않는다

 

네 단단한 껍질을 찢어버린 도끼는 누구의 것이더냐

한 해, 한 해, 단단히 쌓아올려

쪼글, 제 지식을 쌓아놓은 창고를

시린 칼날에게 물려주고 남은 것은

그저 네 본연,

본연의 한 줄기.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워

너는 네 손끝

가녀린 잎 몇 가닥을 남겨놓고는 하였구나

 

둘둘,

깊은 장벽에 둘러싸인 모습은

웅장하여 감히

누구로 하여금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도록 하였으나

네가 너로 존재하는

지금 네 위로는 새가

지저귀고 아래로는 낙엽이

드러난 뿌리를 덮으며

네 옆에서

아이들은 네 곁에서 웃고 있단다

 

떡갈나무여,

너는 더 이상 푸르게 뻗어있질 않는다

네 것을 버렸기에,

하여 너는 그 자리를

네가 아닌 것들로 채워낼 수 있는 것이다.


1) 헤세의 떡갈나무 : 헤르만 헤세의 가지를 쳐 낸 떡갈나무라는 시를 읽고 쓴 시입니다.

 

 

기도

 

몸이 활처럼 곱게 휘어졌다

검은 옷이 몸을 감싼 탓엔가

형체 하나 없이 쓱- 그려진 옷 끝으론

미처 뻗지 못한 발과, 살포시

모아낸 손, 저 바닥 가까이까지

숙인 고개가 조심스레 떨렸다

 

저를 낮추는 것은

필요한 일을 이루기 위한 정도

휘어진 몸은

항상 제 자신을 깊게, 깊게 숙였다

 

,

웬일로 실재하지 않는 몸

숙인 고개로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이야기는 길-게 늘어졌다

기도가 오랫도록 이어졌다

 

욕심이 검게

검게 물들었다

기나긴 욕심이었다

    

  2) 기도 : 미술작품 '기도'를 보고 적은 시입니다.

    

 

오래된 미래

 

뾰족하게 솟은 흑심보다야

뭉툭하니 정겨운 흑심이 좋습니다

날카롭게 종이에 새겨지는 글보다야

술술, 흘러내리는 글자가 더 좋습니다

반짝이며 빛을 내는 하이얀 종이보다야

색 바랜 누런 종이가 더,

더 좋습니다

 

이런 것들로 하여금

나오는 글은 정겹게 휘어지는 글이기 때문에

나는,

오래된 이야기가 너무나도 좋습니다

정겨운 사투리도 너무나 좋습니다

그 터지는 웃음도 너무나 좋습니다

어전에 표기되지 아니한 사람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오-오래된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그래 또,

고전은 지나간 것,

졸음이나 올리는 것이라,

누군가는 말했지만

몇 백 년이나 제 자리를 지켜온

, 고전을 읽는 나는

천천히 넘기는 손길마다 묻어나는 향취가

얇은 종이마다 묻어나는 침 한 끗발이,

이 이야기들이, 유치하게두

오래된 것들이 더 좋습디다,

오래된 것이니만큼

, 더 이어질 이야기이니.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런 뭉툭한 연필을 들고

하이얀 종이 위, 묵혀 논 맘을 흘려내 봅니다.

오늘도......

 

응모자 성명 :이소현

이메일주소 : leesohyun11@naver.com

HP연락처 : 010-8956-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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