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회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한때 내 마음속 깊이 외 4편

by 우주스타 posted Feb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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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마음속 깊이

 

 

한때 내 마음속 깊이, 동굴이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별천지였습니다. 향기로운 청향이

진동하고 수정과 백옥, 아름다운 꽃 산호,

온갖 보물들, 서적들, 낱말들, 희미한 인상들,

대사들, 소설 속의 장면들, 연약하면서도

아른아른한, 그렇기에 더 선명한 보물들,

그들은 내 마음 속의 입주민이었고, 또한,

내 삶이었습니다.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헬리오스가 불타는

전차를 몰고 뻥 뚫린 하늘을 가로질렀고,

저 구름 너머로,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

온갖 경이와 신화의 왕국이 보였습니다.


입주자들이 속속히 들어오면서, 동굴은

계속해서 속속들이 새 단장을 해나갔습니다.

베이커가 221번지, 이름 모를 수많은 행성들,

보물이 묻힌 섬, 바다를 뛰노는 흰 향유고래와

그 흔적을 쫓는 피쿼드 호, 그 안에서는, 내 맘 속

셜록 홈즈와 플라톤이 마주보고 담화를 나누었고,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

역사 속의 걸출한 철학자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소설 속의 인물들, 인상들을 조합해 만든,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온갖 인물들이

사상과 철학과 과학의 토론을 꽃피웠습니다.


동굴은 점점 넓어졌고, 점점 깊어졌습니다.

! 그 아름다움, 그 즐거움을 한 번만이라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 꿈결 같은 풍경들. 조금만 걸어가도 머리가 어질어질했고,

마치 최고의 시인이 생각해 낸 천국에 온 듯 했습니다.

천 가지 경이와 만 가지 놀라움이, 고작,

머리만 들이밀면 보였던 것입니다. 그곳은

항상 봄이었고, 언제나 행복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겨울이 오는 법, 이윽고 추위가 찾아왔고,

그것은 동굴의 추위가 아니라, 외부의 혹한이었습니다.

현실의 냉엄한 바람이 동굴 안까지 들이닥쳤고, 온 왕국은

웃기를 멈추었습니다. 사람들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았습니다. 그리하여 온 왕국이 침묵 속에 빠졌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숨죽이게 하는 침묵, 그리하여

영원한 도탄 속에 빠지게 하는 침묵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꿈이

닫혔습니다.



내 가는 날 달밤

    

내 가는 달밤, 집 가는 달밤,

그대 모습 보았소, 광한전에서

그대 오오, 오작교 타고, 치마폭 들고

내려오오, 오오, 그대는 날 보는데,

저 위에서 보는데, 나는 그대 못 보네

영영 못 보네. 달밤에나 그리네.

 

그대 그리네, 내 맘에 그대 그리네,

오색으로 그대 칠하고, 청록 치마로

그대 다듬고, 볼 위에 적점 찍으면,

그대 숨소리 느껴지고, 그대 심장 되살아나고,

그대 나에게 오네. 그대 나에게 오네.

 

그대 나에게 안기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

가쁜 기쁜, 숨소리. 달밤에서만, 난 그대

볼 수 있네. 견우, 직녀는 행복하리라!

그대 내게 오네, 달밤이 내게 오네.

 

그대만

 

그대 그림자만

쫓소

그대 자취만

쫓소

그대 암향만

쫓소

그대 옷자락만 그대 속눈썹만 그대 옥같이 떨어지는 눈물만

그대 못 다한 한숨만 그대 알알이 흐르는 시름만

그대만 그대만 그대만 그대 그림자만

쫓소

   


 

우리 모두의 동반자, 시간도 죽음도 인생도 아닌 것

 

우리 모두에게는, 동반자가 있습니다.

당신이 뛰면, 그것은 달립니다.

당신이 걸으면, 그것은 뜁니다.

당신이 쉬면, 그것은 걷습니다.

당신이 자면, 그것은 기어옵니다.

그것은, 언제나 당신 뒤에 있지만,

만약 당신이, 너무 쉬거나

너무 늦장을 부리면,

그리하여 때를 놓치면,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수족이 차가워지더니,

결국

그것이 당신을 덮칩니다.

그것은 시간이 아닙니다.

죽음도 아닙니다.

하물며, 인생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양심입니다.

양심은, 항상 우리 뒤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고,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너무 늦거나,

때를 잘 못 맞추면,

늦든 빠르든

그것은 당신을 덮칩니다.

양심은 우리를, 단숨에 끝장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금씩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뿐이죠.

너무 늦지만 않다면, 빠져나올 수 있지만,

너무 늦은 자에게, 기회는 없습니다.

너무 늦은 자는, 혼자 쓸쓸히 돌아보며

저 구렁텅이 위 둥근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입니다.

 

 

 

내 마음의 맷돌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하늘 위에 흔들리는 천체 아니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있으니

그것은 어스름에 나타나는 유령 아니요,

다만 사람 마음 위의 맷돌일 뿐이더라.

 

맷돌은 계속 드르륵 거리며 돌아가니,

짜디짠 흰 소금 태산처럼 쌓아놓고,

그 위로 눈물 넘쳐 푸르른 바다가 된다.

그 위로 갈매기 날아가고, 또 그 위로는

흰 구름이 넘실넘실 조각배처럼 흘러간다.

 

또 그 위로는 멀디 먼 희망이 빛나니

그 빛이 닿는 일 없어라 아아 우리는 어찌하여

이런 맷돌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가 이 눈물진

바다가 목까지 넘쳐 찰랑찰랑 거리고 저 맷돌이

드르륵 손짓하는데 저 님은 멀리 있어라 오는 일 없어라 오지를 않어라

 

나는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친다. 짠물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내 발로 물을 박찬다. 내 헤엄 때문에 바다가 마른다.

나는 갈증에 휩싸여 몸부림친다. 내 손아래 알갱이가 느껴진다.

까슬까슬 느껴지니, 끊임없이 올라가는 반짝반짝 소금 봉우리다.

 

산은 계속해서 올라가고, 에스컬레이터처럼 올라가고,

나는 마침내 희망과 마주본다. 나는 마침내 깨닫는다.

나 자신도, 소금처럼, 맷돌로 갈아져 새로 태어났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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