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인어
물속을 걸어나온 하나의 령
진짜 령인줄 알고
나는 까무러칠 뻔했다
갑판에 딛고 서 있는
하얗고 매끈한 두 다리
자신의 왕국과 바꿨더란다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보다못한 마녀는 깊은 속에서
빌려간 고운소리로 그녀를 대변했다
그러나 사랑을 얻지 못한
인어 껍데기는 끝내
삼백사조각의 거품으로 부서져 내렸다
컴컴한 어둠이 내린 바다에
누군가 공겁하게 붙잡던 부환하나
외로이 좌현에 철썩이고
별안간 고래한마리가
바닷 속 저 왕국에서
비탄과 혼란의 불꽃을 뿜고 사라졌다
고래가 쏘아올린 불꽃
그 불꽃을 나는 창 너머로
두손모아 바라보았다
하늘 자전거
하늘 자전거를 타고서
파란 하늘구름 가까이
뱅뱅 돌아가며 놀면은
하늘 저기에서 어딘가
나를 찾고있을 할머니
우리 외할머니 웃을까
하늘 아래에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눈이 아픈우리 할머니
하늘 구름조각 사이로
내가 잘보일수 있도록
하늘 자전거를 타고서.
작은 시인의 세상
작은 시인은
잿빛의 낭만속에
살고 있다
아스팔트 사이로
삐죽
나온 어린 싹
껌껌한 밤하늘에
총총 박힌
예쁜 인공위성
창밖에 보이는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정수리들
커다란 도시에서
작은 시인은
나름대로 낭만속에 살고있다
오래된 책방
오래된 책방문을 열면
묵은 책냄새가 푹
콧속을 채워들어 온다
연극 개론을 펼치면
무명배우의 눈물과 땀이
장 마다 스며나오고
요리백과를 펼치면
신혼이었을 부부의 사랑
또는 어려운시절 배고픔이
때묻은 동화를 펼치면
누군가의 어렸을적
순수한 낙서가 베어있다
오래된 책방에 있으면
온몸 구석구석 누군가의
추억이 따뜻하게 덮여온다
아버지의 낡은 방
우리집 한쪽에
아무도 없는 퀘퀘한 방에
낡은 창틈새로 먼지들이
차분히 내려온다
그 먼지가 닿는 곳에
아버지의 낡은 셔츠가 있고
낡은 양말이 있고
낡은 손목시계가 있다
낡은 셔츠는 더부룩한 몸
낡은 양말은 갈라지고 부르튼 발
낡은 손목시계는 퉁퉁부은 손목
아버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런데 구석에
아버지의 낯선 옛날 안경은
가장 낡았으면서도 아버지의 눈을
자세하게 그려주지 않는다
안경이 내게 말한다
왜 바라보지 않았니
왜 마주하지 못했니
왜 그토록 무심하게 지나쳤니
가슴에 콕콕 박히는
안경의 모진 말
오래 된 우리집에서
아버지의 방만 낡았다
응모자 성명:김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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