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전등화>
나는 무너지지 않았고
네 품에 오르기 전 꽃을 들어 밝혔다
어두운 세상 흰 실오라기 그릴 때 쯤
뿌연 날빛처럼 꽃잎하나 떨어졌고
청아한 마음에 네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살아있구나 안도감에도 종말의 해는
떠올랐고 우리의 날은 저물어갔다
캄캄한 밤 무언가를 속삭이는 한 줄기
언약은 비록 켜켜이 묻혀 졌으나
온 세상은 영영 깊어만 갔다
<긴 침묵>
허언 누더기에 깊이 패인 공허함들로
바닥을 수 놓아 봅니다
얼핏 보이는 푸른 하늘이 작디작은
내 모난 열망들의 고리들에 맺혔을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제 눈에 비친 흰 그림자는 저 별들처럼
내게 던져진 수 많은 상념들이오
그것들은 온전히 움켜쥐는 힘은 내 마지막
악수에 취한 검은 눈동자의 말 들이였나
이제 다시 헤아릴 수 없는 별들과
담기지 못할 것들에 대해
무뎌져가는 손 끝과 떨려오는 마지막
찡그림에 천천히 되새기며 담아봅니다
#부연설명
낭만은 흐르고 절망은 흘렀습니다.
소리 없을 긴 침묵의 마지막 말은
끝 끝내 닫혀 지지 않을 우리의 마음입니다.
(2014. 04.16)
죽어가는 것들을 어여쁘게 여기신 윤동주 선생의 마음을
천일의 아픔을 담은 세월호에 투영해본 시입니다.
<혼연>
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눈에는 담지도 손에는 잡히지도 않아
의식적으로 잠에 들었다
그 꿈 위에 난 살고 있었다
네가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꿈이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은연중에 사랑한다는 말은
그 꿈에 깃든 네 영혼에게
전하는 메마르지 않음을 바라는
내 말들이었다
<장마>
어쩜 그리 쉽냐는 물음에
말 없는 정적은 아마도
네 울음을 대신할 마지막 배려였다
우리가 꿈꿨던 뜨거운 날들을 고대하며
낭만을 비추던 해의 짐에 서로가 아쉬워하듯
만남은 어렵고 헤어짐은 쉬웠던 걸
말랐던 봄이 채, 햇살을 받기 전
넘쳐난 갈증은 봄을 조여 왔고
장마는 그 갈증을 분에 넘치도록 씻겨 내려가게 했으며
찬바람은 모두를 흐트러뜨리듯
겨울의 눈은 전부를 묻어버렸다
잊혀 지진 않으리라
그 어딘가에 잠겨있을
당신과 내가 머금은
한 줄기 마음만은
<삶은 아름다워라>
우리는 언제나 날개를 잃고 심장을 얻는다
날아 갈만큼 가벼운 마음을 주기에
인간은 너무도 어여쁜 존재였기에
신은 가슴의 단단함을 사랑했으리라
서로의 눈빛을 읽고 따뜻함을 입으며
우리는 죽음 앞에서도 숭고히
상실의 기쁨을 마신다
하지만 끝 끝내 축여내지 못한
하나의 사랑만은 거두어내며
기억에서 영원히 가두어내신다
상심은 잃어버린 마음이 아닌
서로의 마음이 얼어버린 것임을
나는 비로써 알게 되었다
<죽은 자들의 노래>
하나 둘 씩 모여드는 자들의 눈엔
마치 서린 안개의 눈과도 같았다
곧 걷혀질 회한들이란 걸 알기라도 하듯
연신 입김을 불어대며 죽음의 탄생을 은연중에 내뱉었다
뜻 모를 울음이 태초의 시작이었다면
종말의 노래는 뜻 있는 물음이었다
시작과 함께 죽음을 향해 달려온 갓난아기의
체 마르지 않던 눈물에 모두가 숙연해진다
손에 찬 저승의 일련번호들이
하나 둘 씩 채워져 가며
그 곳의 삶은 열린다
시작과 끝은 어디에든 삶의 죽음이며
죽음의 삶이 되어갔다
<새 밤>
저는 달을 사랑했고 별의 쓸쓸함을
해의 찬란함보다 가여워했으며
밤의 고요함에 먹먹함을
먹고 살아갔나이다
떨어지는 잎사귀에 핀 이슬들은
아름드리 보살펴주는 이 많아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별 빛들엔
눈물로 소리 내어 울어주었나이다
하릴없이 못 다한 말들 남 몰래
주렁주렁 엮어다 숨기고픈 맘들
우두커니 밤하늘에 비춰보곤
우는 별들 하나하나에 이름 지어 주었거늘
이리도 외로울 수 있는 것 또한
새 밤에 쓰고 쓰여 질 당신네
아픔들 같아 기꺼이 살아가겠나이다
<붉은 강>
입술은 거짓을 향해 치닫지만
눈빛은 그 곳을 거슬러 흐른다
타인의 사랑을 갈구하며
내 강은 말라져만 간다
부대끼는 인파 속에 모난
조약돌 하나 내 손을 스치며
온통 붉게 물든 밤
남 몰래 흐느끼는 핏빛 강의
흔적을 해치운다
어스름 필 새벽녘이 꽃 필 때 쯤
말끔한 새 생명에 다시금 태어나며
사랑 한 모금 다시 건네 본다
눈이 슬픈 짐승들이 주고받는
마음들은 하나 같이 나부끼며
악취로 모두를 잠식 한다
거짓과 진실의 뒷모습이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고 춤추는 이 곳
사랑은 오늘도 내일의 부정을 위해
연신 꿈꾸고 있다
<유작>
죽어가는 것들이 고개를 파묻고
묻고 답했던 기억들을 쓰곤 했다
죽어져만 가야 할 내 모습이
어렴풋이 비쳐 마지막 온 점은
오늘을 살아야 할 나에게 양보했다
내 생에 가장 빛날 모습이 다가왔고
동공 사이로 비춘 흰 빛,
내 검은 글 동자 하나 온 점에 떨구어 낼
마지막 유성우 같았다
위태로이 지탱하던 찬 밤,
내 나무 끝에 그 별이 사라질 때 쯤 힘없이
소리치는 부목 하나 꺾어 눌러쓰며 울었다
얼마나 힘겹게 버텨 냈는지
뭉뜨러진 나무 끝에 맺힌 타원,
슬픈 내 첫 시작의 울음 같아
한 동안 가장자리만 매 만졌다
오른 것들에 대해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내려갈 것은 단 하나인데
몸은 비웠으나
마음은 가득 찼다
흔적 없을 미련함에 헛헛한
숨 한 번 채우며 지그시
점하나 찍었다.
<만인의 겨울>
겨우 사는 우리들을 위해
겨울은 살 공기마저 얼어주신다
조금 날 센 호흡으로 살라며.
그 얼마나 창대하리이까
내 비록 얼어붙은 손과
부러 튼 입술로 당신의
숨결을 읖조리이나니
그대는 제게 이렇게 전해오리라
아픈 건 이쯤이다
3월에 몸 녹여 6월에 내 이름
불러주오. 9월에 실눈으로
어렴풋이 네게 찾아올터이니
12월에 온 눈으로 네 마음을 본다면
그 때는 반드시 단단해져있기를
슬픈 건 그 쯤이다.
가는 이의 그림자를 밟지 아니하며
오는 이의 아지랑이를 밝게 비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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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길
010-6256-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