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차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꽃날알 외 4편)

by 뜸북 posted Feb 0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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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날 알

그토록 오래도록 연유도 알지 못하며

살아온 그대여, 세상은 그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빼앗았다

인연을 주어 감정을 만들었으며

시련을 주어 세상을 알게 하였다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그대 안의 그에게

나는 말한다


이제 곧이어 어쩌면

끝나갈 긴 시간의 비릿함과

까슬한 표면 숨구멍에선

곧 자랄 한 송이의 향기

얼마나 기다려 왔는가

난각 아래 고요히 침묵해온

그대만의 꽃 날 알이여


감동

몇 년 새 많이 희어버린

나이 사이 주름은

염통 쥐어짜듯

붉은 물 흐르게 하고


남 모르게 일하던

당신의 희고 곱던 손가락은

병든 이마에 올린 수건마냥

멀건 물 흐르게 합니다


내려놓고 내려놓아

당신 위한 꽃 한 송이 들 여력이 생기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를 이렇게 물들게 한 당신은

아주 멀리 저 하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스며든 기분 좋은 축축함

그제야 물은 구름까지 차오릅니다


추모란

몇 년 쯤 시기가 지난 사진첩에

낯설지 않은 흑백사진

지난 추석 찹쌀 빻으시던

어머니 손바닥 처럼

따뜻하게 희던 너의 얼굴과

짙은 흑색으로 피어난 꽃들

아, 과꽃

보이지 않지만 분명

남자색(藍紫色)으로 물든 과꽃이다

주변에 아랑곳 않고

그저 강렬히 색을 발하던

가을 그 과꽃

곁에 없는 너를 추억하니

이제야 알겠구나

항상 남을 비추던 너의 미소가

분명 과꽃이었다


그렇게 되기를

빗물 내려와 땅에 떨어질 때

흐르는 냇물 되기를


고여 수일 내 마르거나 붉덕진 흙탕물 아닌

흐르는 냇물 되기를


머문 자리 떠나기를 주저하지 않고

흐르고 흘러 너를 갈망하던

그를 위해 깨끗히

흐르는 냇물 되기를


호수

호수에 한참 겨울이 내린다

호수는 사랑하는 자신의 모든 것들을 지키기위해

얼음의 벽을 쌓는다

벗이었거나 혹은 비슷했던 이들은

호수를 빼앗기위해

정을 대고 톱질을 한다

깨지고 엉망진창이 된 호수는 자신을 잃고

분개하고 떨며 더욱 감싸안고 외로워진다


톡톡, 무언가 깨지는 소리

깨짐에 슬픔이 어려있던 호수는

또 다시 탄식의 눈빛으로 쳐다본다


톡톡, 무언가 깨지는 소리

그것은 사실 부러진 뼈가 붙는 소리

톡톡, 무언가 깨지는 소리

그것은 사실 도려내진 살이 나는 소리


아, 그것은

그것은 잃어버린 나의 것이 새로이 탄생하는

생명의 소리


호수는 그제서야 감싼 팔을 허물고

비로소 나를 자유로이 하여

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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