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암체에서
몸을 동글게 웅크려
보이지 않는 세월을 지탱한다.
파랑波浪이 이는 세월 속에서
강물은 순결을 말하고
무용한 한 사내의
썩어서 문드러진 뼈와 살을 드러낸다.
아니
겨울 습기와 재,
그리고 낙동강 거북이를 말하리라.
검고 긴 어둠 그 곁에
무용한 한 사내의 반쪽이
세월에 잠기어 서 있다.
2. 바위
짓눌린 그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서투른 병정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수 있었다.
네 숨결이 처음 놓이던 그 자리에
이제 더는 이끼가 끼지 않으리라.
냇가 옆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이 달빛의 위도는 어디던가.
가냘픈 달빛에도 으스러지는 살이니
가슴에는 뜨거운 한 줄기 눈물과
너의 향수鄕愁를 나의 발에 적셔주려무나.
그것은 짓눌린 그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병정의 가슴에 젖어드는 붉은 피요,
꽃이었더라.
3. 조국
내 마음 한 폭의 화지에
찾는 이 없는 아로새김
걸려 있더라.
스스로의
열정과 회한悔恨을 이기지 못한
신념의 감방에서
나는 통곡하여라.
인간애愛는 끝이 났는가.
통곡도 다 못하여
한 많은 두 자字는
한 폭 한 폭 애정이어라.
걱정스런 가무와 연주가 파하면
보는 이 없는 감방에서
가루가 되어 부서지리라.
4. 자유
가로등불 켜진 공터에
거미줄같은
촘촘한 어둠에 숨이 막힌다.
거미는 지각知覺 없는 매도罵倒를 향하여
정열의 자취를 써내려간다.
통통한 손길과
긴 하품의 연속 끝에
어둔 천장에 희뿌연 꿈을 수놓았다.
아, 나는 내 하나의 저항도 없이
무수한 꿈틀거림으로
창망悵望한 달빛에 눈물짓는다.
5. 민들레
비가 오고 눈이 나린다.
봄이 오고 벌이 날아든다.
민들레 한평생이
그렇게 더해진다.
절로 난 흐름의
바위틈 박토에,
근심을 씻기우고 때를 잊고
또 제 혼자
바쁘게 몸을 가누는 꽃이여.
얼마를 더하여야
세상을 알 수 있으리
눈이 흐려지면
밝아지는 이치,
이것을 무엇이라 하랴
적당한 홀가분함으로
다만, 살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