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회 창작 콘테스트 시공모/날개 외 4편

by 야스민 posted Feb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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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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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없는 하루를

도시의 하류까지 떠밀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램프에 묻은 희미한 지문 같은 저녁이

텅 빈 골목으로 따라와

몸이 빠져나간 옷처럼 쓰러진다

 

겨드랑이의 점점 부푸는 통증에서

피어난 날개

무작정 발돋움을 해보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히다가

모든 것을 받아 안는 쿠션이다가

드난살이처럼 돌아다닌 일터

늘어만 가는 이력서의 경력이

울퉁불퉁한 중력에 파닥거리다

휴지조각처럼 떨어져나간다

 

청소년이라는 단어 하나

그를 향한 떨리는 첫걸음만 꼭 안고

부레처럼 가벼워져 검푸른 창공을 날아오른다

멀리 관악산이 보이는 한강 아래 세상은

어둠에 핀 군락처럼 금빛으로 하나일 뿐

심지도 않은 별들이 새싹처럼 돋아나면

기간제 교사의 내일이 담긴 램프하나 켜들고

밤의 덤불숲으로 기우는 그림자

어지러운 기류에 깃털이 흩어지고

차가운 빛이 눈 뜨는 곳에 바람이 맨발로 떨어진다

 

산등성이처럼 다가오는 아침

나는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의 날개에서 차용.

 

 

사랑, 손톱같은

 

조금 자란 손톱을 깎다가

신문지 한쪽 1단 기사에 떨어진

손톱 같은 사랑

여자가 기간제 교사라는 것을 알고

머뭇거리다 다가갔던 그는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고

만난 지 50

한강 선상에서 촛불을 켜고

집으로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들려주었던 사람

인사드리러 집으로 와서는

엄마의 달갑지 않은 환대에

자존심이 상해 전화를 받지 않던 사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를 배지삼고

별처럼 빛나는 가족을 꿈꾸던 남자

100일 만에 변한 사랑의 무대에서

초라해진 여자 아름답게 퇴장당했다

기간이 되면

조용히 사라져야했던 그녀의 천직처럼

조금만 자라도 참지 못했던

너무 짧게 깎아 아프다던

기간제 사랑

눈으로 훑은 활자처럼

휴지통에 비운다

 

 

첫눈 오는 날

 

나무가 겨울 속으로 들어갔다

무성한 잎과 그늘이 떠난 후

바람을 업고 긴 터널을 건너야하는

등뼈가 앙상하다

성긴 눈발이 굵어지고

흐린 하늘이 나뭇가지에 걸린다

겨울이 보낸 첫 편지

나무와 나무 사이 수많은 언어들이 나부낀다

자욱한 지평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라지고

시간이 멈춰버린 곳,

고요한 축포가 울려 퍼지는

숲은 온통 꿈속이다

 

 

겨울 정원

서 민 경

때를 기다려 일제히 낙하한다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겨울에도 꽃이 피는 도쿄를 향해

 

코쿠분지 교회의 정원에

일생을 건 모험이 지상으로 안착해

신생아처럼 사위를 설레게한다

 

유산이 되고서야 알았다

더러는 닿기 전에 사라지는 슬픔인 것을

꿈꾸는 외로움 깊어가는 어디쯤

만남은 태어난다는 것을

 

수북이 쌓인 꿈들을

어둠 깊이 흡수한

꽃과 나무들의 작은 세상은

해마다 선명한 빛으로 건설되었다

 

뿌리의 근육이 풀리고

화려하고 떠들썩한 계절이 시작되면

산고를 잊은 겨울은

깊어지는 허공에

또다시 꿈을 채울 것이다

 

 

 

정월 보름달

 

 

 

이케부쿠로역에 내려 물어물어 찾은 릿쿄대학

당신의 절룩이는 시간을 보았습니다

땀내와 사랑 포근히 품긴 학비 봉토를 받아

강의를 듣던 숨결

나즈막한 떨림

확대되는 채플실

북간도 청년의 맑은 영혼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새벽 한기에 몸서리치던 후쿠오카 독방에서

수없이 불렀을 이름, 별들이 빛나는 추모식

영정 앞에서 사진 하나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화살 같은 외마디로 떠난 꿈 한송이

겨울 나뭇가지에서 환하게 떠오릅니다

움푹패인 시대를 밀어냈던 기도와 시처럼

발저린 육첩방 비추며

도쿄의 찬바람 그윽하게 품으며

스물여덟 비망록의 바다가 흘러갑니다

 

 

 

 

 

 

 

  이름: 서민경

메일: dearjasmine@hanmail.net

연락처: 070-7528-5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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