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 현석
먹구름 걷히려는
제주의 가을 오후는 바람이 쎈데
달 길의 끝이라는 애월 방향에서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는 현충원 비문처럼
영원과 변화의 가치를
이리 저리 길 따라 더듬어 보네.
까마귀 심히 울던 날.
한라산 길은 완만해도 멀고 지루한데
내려올 것을 알면서도
모르니 올랐지 알았다면 가지 않을 것을
인생도 꼬였다지만
깊이 반성하면 스스로 꼬았던 건 아닌지
거실에서 잠드니 창문 밖에서
들여다보고 지나고 들여다보고 쉭 지나는 하얀 물체들.
이곳은 민족의 시련이 마지막으로 닥치는 곳.
그래서 오랜 세월 바람이 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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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Ⅱ
서 현석
나무에 매달려 죽도록 맞다 끈이 풀려서
눈에 광기를 띠고 도망가던 누렁이.
따라가던 주인의 목소리와 손짓에
피 쏟으며 꼬리 흔들고 다가온 누렁이는
다시 매달려 컹 소리 한번 내곤 죽었지요.
그런 누렁이를 맛있게 뜯어먹던 동네사람들.
안내방송을 따르던 승객들은 타서 죽고
어른들 말을 잘 듣던 아이들은 수장되고
인간의 욕심이 업이 되어 비극을 부릅니다.
슬픈 추석 Ⅳ
서 현석
누이 없이 자란 조카들이
왔다 간 저녁에 비 내리고
용돈이고 선물이고
제대로 챙겨 준 것이 없어서 쓸쓸한데
강아지가 발로 토닥여 주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천당에 가기에는 염치없고
지옥에 가기에는 억울합니다.
어린 날
하루는 착하게 살고 하루는 나쁘게 살면
이다음에 어디로 갈지 궁금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지옥이었습니다.
선악으로 장난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연이은 실패 앞에서는
인생에 정답이 없잖아 하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인생이 뒤죽박죽되었습니다.
세상 떠날 즈음
천당과 지옥도 없을 거라는 느낌이 짙어지다
허무만이 남지만
아기나 새싹을 보면서 다시 희망을 가지다
눈감겠죠.
파쇄
서 현석
살아서는 몰랐던 이의 장례를 은밀히 치른다.
얼굴이 바뀐 자의 옛 모습을 지우며
먼 나라로 떠난 옛 이름의 기억을
윙윙 바스락 바스락 부순다.
플라스틱 비선에
사진과 숫자와 글씨로
살아서 다른 눈들에 자신을 내보이던 사물의 마지막 의식.
무엇이고 남기지 마라Ⅱ
서 현석
사는 동안 내 것은 없다고 끝없이 생각해 보니
마음도 존재도 사랑도 자식도 재산도 아무 것도 없었구나.
자기 자신의 인생 또한 본디 없었던 것이니
무엇이고 남기지 말라.
숨 쉬는 동안 희망이 있었거나 없었거나
본디 없음으로 돌아가누나.
살아온 날을 기록하지 말며
지는 낙엽처럼 흙이 되는 주검처럼
그냥 조용히 왔다 갈 일이다.
제출자 서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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