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 농아(聾啞) 물고기가 부르는 노래 외 4편

by abckim3 posted Mar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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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聾啞) 물고기가 부르는 노래



틈 사이에서 세상의 소란과 공기가 파열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한 줌의 짙은 빗물

바람은 가끔은 물고기의 집이 된다

물고기의 정갈한 비늘이 어둠의 밑바닥까지 침투한다

밤하늘을 자맥질하며 사력을 다해 바람을 거슬러 오른다

바람은 자꾸만 물고기를 뒤쫓았고

물고기의 울대엔 나른한 바닷소리가 났다

노랗게 휘청이는 소리였다

심해(深海)를 헤엄치는 오랜 갈증의 소리,

작은 포효로 기억될 물고기의 소리,

길을 잃은 참새들이 젖은 몸을 말리고

계절은 모두들 힘 있게 주저앉았다

물고기는 그렇게 소리 없는 풍경을 뻐끔거렸고

한참만에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한껏 늘어진 바람뿐이었다

쉽게 허물어지는 바람과 푸짐하지 못한 햇볕,

물고기는 뼛속 깊이 자리 잡은 심해(深海)를 노래했다

크고 작은 크기로 뭉개지던 소리는

벚꽃처럼 투망질되고,

누군가는 낡은 비닐을 향해 손을 뻗기도 했다

물고기는 허물어진 바람의 윤곽이

자신의 속살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노래 속으로 끝없이 헤엄쳤다




달을 품은 등대



아버지는 오래도록 등대였고

밤을 이끌며 섬이 되도록 살았대요

촘촘히 그물망 마다 걸려있는 아버지의 생은

언제나 조각달을 쥐고 있어요

수면을 달리며 빈 배가 되어 흘러가는 밤에도

노 저어 온 길은 죄다 낡고 낮은 집들이었어요

아기의 깊은 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새벽의 달들에게

아버진 기꺼이 제일가는 외딴집이 되어주었지요

시시때때로 전복되는 파도에 빈 집이 된 바다,

오랜 결박과 어둠은 언제나 길을 잃었어요

눈꺼풀을 치뜬 바람,

그 밑엔 항상 아버지가 덧칠해져있고

바람을 거스를 줄 알아야한다는 말만

뭉게뭉게 피어났답니다

그렇게 애기 업은 동상처럼 달이 휜 허리에 걸릴 때까지

아버지는 등대가 되었어요

이따금 밤이 너무 쉽게 찾아오면

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알몸으로 떨었구요

꽃잎들이 모여 울 땐, 나도 등대가 되었어요

집채만 한 크기의 파도가 몰려올 때면

아버지는 바다와 같이 살라고 했지요

나는 물러서야 할 자리에서

순종(順從)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하류에서 상류로

바람의 말을 계절 사이사이 띄워 보내며

아버지의 생을 고이 접어 보냈답니다

목덜미를 쓸고 지나가는 오랜 염원들은

새의 날개가 되어 쉼 없이 바다를 떠돌았어요




바람의 꿈을 거닐다



간판 없는 슈퍼, 다대포 해수욕장을 홀로 지키고 섰다

사람들은 허물어져가는 이곳을 모두 행복슈퍼라고 불렀고,

허리가 파도만큼 굽은 노파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모두 노파를 동백꽃 할머니라고 불렀다

여름바다의 축제가 시작되면 노파가 피워낸 이야기는

모두 모래 위를 거닐었다

조개의 꿈을 하늘 높이 전해주기도 하고

흰 포말로 해초들의 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일출과 일몰의 꽃, 발길 닿는 곳마다

바람과 아이들은

서로를 다대포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젖 냄새와 물러진 세월은 모두 바다와 함께했다

노파는 틈만나면 바람의 꿈을 키웠고

바람이 밤잠을 설쳐가며 하늘 높이 쌓은 모래성은

누군가의 안식처와 보금자리,

돋보기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밤은

뱃고동을 울리지 않아도 별이 가득했다

어제 오늘의 순간들을 하늘 높이 실타래로 감으면

어떤 이는 떨어진 유년을 줍기도 하고,

바람이 스치는 옷깃에 자갈들의 발자취가 새겨지기도 했다

붉은 몸뚱어리로 쓰는 생,

바다는 바람의 꿈을 등에 이고 긴 여행을 떠났다

행복 슈퍼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뛰어놀았고

오랜 잉태의 순간이

다대포의 노을 위로 자라기 시작했다




여자의 내부엔 섬의 흔적이 흐르고 있다



덜커덩 덜커덩, 머리를 질끈 동여 맨 여자

풍경들이 줄지어 선 곳에서

이끼처럼 붙어있다

종착역엔 등걸잠 자던 플라타너스 몇몇만 마중나와

여자를 질겅질겅 씹어댔다

꽃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자꾸만 여자를 삼켰다

뜬 눈으로 지내온 시간 동안

여자의 내부엔 섬의 흔적이 흐르고 있었다

한 번도 부푼 적이 없었던 꿈,

여자의 숲의 가장 안쪽자리에서부터

섬은 발자국을 새기고 있다

대합실 칸은 또다시 적막이라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여자에게 종착역은 늘 가파른 곳이었다

바다는 여자의 숨을 따라

바람의 집으로 간다

바다의 내음이 나라는 마당을 만드는 곳,

섬은 여자를 지탱하며 언젠가 올 막차를 기다린다

어둠은 길게 늘어진 개밥바라기를 씹고

구름은 여전히 레일 위를 달리는 중이다




곱등이 삼촌



이리로 오세요. 한 층 더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행복백화점 지하주차장엔

비좁은 밤을 껴입은 우리 삼촌이 살아요

‘光’자 돌림 이름인 삼촌은 햇빛을 싫어했어요

세상의 모든 풍경들은 어둠에 차단된 지 오래라서

이곳엔 춥고 낮은 배경음만 웅장하지요

사이렌을 울리는 백일홍 꽃잎은 한 달 치 봉급처럼 가볍고

키가 작은 삼촌은 언제나 땅과 가까웠어요

볼록거울에 반사되는 아침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않을게요

구석진 곳에 주차된 삼촌의 가지런한 모습은

깃털처럼 가벼웠고요

삼촌은 자꾸만 급정거하는 하루를 바라보며

차 뒤에서 숨바꼭질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질근질근 씹었어요

꼭꼭 숨어라, 꼭꼭 숨어라

브레이크를 밟는 게 습관인 사람들은 삼촌에게

따끈하고 푸짐한 연중무휴의 아침을 건네주고

CCTV 속 삼촌은 언제나 구부정한 뒷모습이었지요

삼촌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귀담아 듣는 걸 좋아했어요

무전기는 여전히 통신불능,

후진하고 있을지도 모를 허기진 바람만 앉았다가요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삼촌의 생은 비상할 수 있을까요

언제쯤 삼촌에게도 알맞게 자리 잡을 곳이 생길까요

주차선 칸마다 별자리가 앉았다가요

어두운 입구엔 종달새가 어둠을 한 입 베어 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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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사항>

이름 : 김수진

이메일 주소 : abckim3@daum.net

핸드폰 주소 : 010-749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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