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모 5편(옛 동네 외 4편)

by 폴리2 posted Mar 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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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동네


거미줄 같이 엉킨 전깃줄이

배가 불러 축 늘어져 있고

참기름 짜는 고소한 냄새가

사람들을 불러와 잡다한 수다를 볶고 있는

"방"자는 오래된 풍화작용으로 떨어졌는지

감쪽같이 사라진 채 "앗간"의 추레한 붉은 글씨만

덩그러니 남아 서로 부둥켜 사는 모습에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황구와 빈 깡통이

요란스럽게 울고 가는 폭양이 내리 쬐는

한 여름의 대낮은 정의 흥취를 자아낸다.

옛 그리움은 오랫동안 녹지 않는 만년설 처럼

내 마음 저편에 굳어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추억과 사랑으로 엮은 한 묶음의 볏단 같은

향수가 내가 뛰어 놀던 그 곳에서 반겨준다.



야 경


화강암 채도가 고요히 낮게 내려 앉고

질긴 두꺼운 껍질이 몸을 감싸안는

시간들이 미세한 떨림과 함께 찾아올 때면

어김없이 외로움을 한 길에서 맞이한다.

두려움들이 도처에 뛰고 나오고 짙은 근심이

의식을 지배할 때면 존멸을 가르는

심장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잿빛 건물 아래로 내리는 낙엽비가

외등의 노오란 불빛을 에워 쌀때 허공에

허우적 거리는 외로움들을 밀어 내고나서야

새까만 원시의 어둠 끝자락을 환희 밝혀 주는

아름다운 경치가 밤에 찾아 온다.


모기향


우리집에 초록뱀이 살고 있다.

똬리를 틀어 앉아 먹잇감을 찾기 위해

붉은 혓바닥을 낼름낼름 거린다.

아이들의 곤한 잠을 깨우며

윙윙거리는 고얀 놈에게

붉은 혓바닥으로 일침을 가한다.

맥없이 주저앉는 고얀 놈

제향祭香의 연기처럼

초록뱀은 밤새워 소멸 한다.


조강지처


때론 발이 되어 주기도하고

때론 상념에 갇힌 형신의 빗장을

정소 해주는 삶의 동행자 이다.

당신 없이는 못 살겠다며

갈애하고 붙잡을 때는 언제고

함께 물고 걸어온 당신을 헌신짝 버리 듯

쉽게 변심을 한 못된 그로 인해

순수했던 마음은 너덜해지고 풍성했던 감정은

메말라 쩍쩍 갈라지는 모습들이 비루하기 짝이 없어

가족으로도 봉합되지 않는 부끄러움을 낳는다.

으로 이어진 부득불不得不한 우리네 인생은

잔약한 숨결과 애잔한 심서心緖로 진심이 통하는

당신의 마음을 읽고서야 쉽게 끊어지지 않는

인연의 매듭을 다시 짓는다.


마을버스


옅은 안개가 내려 앉은 미명의 시간에

어깨를 짓누르는 지치 삶의 군상이 있는

실타래 처럼 엉킨 좁은 골목 어귀로 나는 매일 달린다.

고단함의 졸음이 몰려와 눈꺼풀이 처져도

얇은 지갑의 생계를 책임져야하기에 오늘도 달린다.

삶의 비환을 신발 뒷굽이 닳아 헐어지도록

어루 달래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힘껏 달린다.

염천에 흐르는 땀과 옷깃을 여미는 삭풍의 고통이

몰아쳐도 참고 이겨내며 나는 달린다.

세상의 무거운 짐으로 가뿐 숨을 몰아쉬고

속이 메슥거려도 달리는 동안 나는 기쁨과 행복이

파란불 신호등에 걸려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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