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와 냉장고
한여름에 냉기가 돕니다
얼음상자에 찰랑 담기어 당신을 맞이하러 갑니다
이마에 묻은 살얼음 한 장으로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가냘픈 어깨를 틀어쥔 당신은 나를 각지게 얼려 버립니다
배관을 따라 흐르는 오싹한 노래도 아래층까지 들려옵니다
당신과 함께 굳은 날
뽀드득 서리가 밟히는 얼기 좋은 날
채소도 과일도 생고등어도 숨죽이는
심정지(心停止)
이런 날에는
베링 해(海)를 떠내려 온
당신의 무릎 위에 시를 써도 좋겠습니다
낯설지 않으시다면
우리의 몸살이 아직은 미열이기에
녹아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시는 똥이다
아가는
똥을 누지 못하고
나는 시를 쓰지 못 한다
힘은 주지만
몇 방울 콩알만큼 떨어지는 시
식은땀이 흐른다
싸는 법을 배우지 않았어도
먹은 만큼 싸야 하는 시
날 때부터 똥을 누지 못하는 아들에게
의사는 시를 쓰라며 구멍을 뚫어 주었다
3일째 산 날
옆구리 매달린 인공의 항문에서 나오는 눈물이
시가 되었고
첫돌을 살아내고는
똥구멍으로 나온 똥이
시가 되었다
초롱 눈에 조막손
옹알거리는 너를 변기에 앉혀 얻은
숨 막힌 시
한번 누고 마는 게 똥이 아니듯
이제 시는
고통과 기쁨만으로는 완결(完結)할 수 없게 되었다
삶도
똥이다
거미에게 먹이주기
시야를 가리는 거미새끼가 성가시다
콧잔등에 앉아서 와이퍼질을 해대는 통에 워셔액이 바닥나고
이놈 줄에 매달린 여덟 팔다리가 내 것처럼 움직이지도 않는다
밥을 먹을 때마저도 입에선 매연처럼 그물이 뿜어져 나와 밥그릇을 돌돌 말고
천장에 매달아 버려 황달기 있는 신호등에 그늘이 지고 난 빨갛게 죽나보다
장난삼아 던진 가짜 먹이에도 쏜살같이 달려갔던 시절
꿈틀대지도 않는 먹잇감을 굴리며 한 땀 한 땀 써내려 내다 바쳤던 처녀성
끝내 먹지도 못할 파지를 우걱우걱 씹으면서 지나친 공복 속에 앙상한 손 위에
툭 던져질 영장을 받으란 것인지 저승 갈 날짜엔 임자 없는 거미줄만 빈칸으로 채워져 있을 테고
눈이 내려 부끄러움 위에 쌓이니 위태롭다
짜놓은 좌표 위에 파리 한 마리 놓아 준다면 겁탈하듯 송곳 빨대 깊이 박고
뇌수를 들이마실 수 있을까 아니면
케냐 암사자 한 마리를 독침으로 등에 업고 시의 제단에 사바나의 왕국을 바칠 수는 있을까
먹잇감을 돌돌 말아 거미줄에 던진다면 무당거미 신호등엔 어떤 불이 켜질까
내 사랑 삼겹살
삼겹살을 구울 때면
사랑이 뭔지 알 것 같아
참숯 불 내음에
톡톡 터지는 기름 파편
육즙으로 젖어드는
아름다운 발정이지
푸른 상추에
살균성 마늘
고추 한 점으로 눈물도 곁들여서
너의 맨살
핏물의 노린내도
쌈 싸서 다 가려줄게
앞니를 조심해
단단히 박인 옹이는 살살 발라야 돼
오도독 네 아픔까지 깨물 수는 없으니까
알지 침묵은 절대 불가야
끊임없이 말을 붙여 줘
찬 소주로 의구심도 말끔히 씻어 내고 말야
섬세하게 널 씹다 보면
어느새 내 혀도 씹고 있지
이쯤해서 몸 좀 풀고 우리
건배나 하자
너를 구운 향기
널 더듬은 기억들을 놓을 수는 없었어
지금
열 손가락
킁킁거려 맡아보면
사랑은
속옷까지 배어있는 지독한 기쁨 같아
시에서 피자 냄새가 난다
놀라운 일이다
詩에서 냄새가 난다니
고구마
달달한 더운 냄새는
육친을 노래할 때요
물침이 턱으로 흐르는
아이의 비린내는
갓 사귄 애인을 그리워할 때다
탈지면에 밴 물파스 향
알코올에 적신 거품 나는 냄새들
시의 격렬한 저항의 몸짓일 터
억지만 버무려 놓고 시침을 뚝 떼는
시에서는
빗방울 한 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구두약 냄새도 나는 것이다
시에서
냄새가 난다는 건
새색시가
살포시 뿜어낸 소리다
쑥스러운 미소로 방귀를 트는 일이다
갓 구운 피자 조각을 쥔
아이들이 맡는
냄새
잘 구워진
시의 꿈이다
성 명: 김 종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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