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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맞습니다!!)
고마웠다
오늘
일상이 조금 일찍 끝나서
고마웠다.
전철은 마치
나를 기다려 준 듯 타이밍이 맞아서
고마웠다.
눈앞에 보이는 버스를
달려가서 탈 수 있어서
고마웠다.
그대를 향해 가던 모든 순간이
고마웠다.
잠깐일 지라도
나의 시간,
그대의 시간의 이음새를
서로 끼워 맞출 수 있어서
고마웠다.
그리고
내 심장에 대못 하나 박아주어서
고마웠다.
이건 왜 고마울까…... 비극을 뺀 자리엔
상처는 아물지 않고
전에는 없던 기관이 생겨났다.
영롱하게 빛나는 샘물이
그렇게
나의 심장에 채워졌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그것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피어오르는구나.
삼월의 눈처럼
창밖을 보니
눈이 온다.
삼월에 눈이 온다.
마치 너처럼.
쌀쌀한 오늘이라
눈은 아주 조금 커졌었다.
나의 작은 모닥불을
포근히 감싸고 싶었던 건지.
눈의 작은 소망은
벽에 닿아 녹아버렸다.
상냥했던 눈에 고마움을 전하리.
나의 불꽃은 꺼지지 않을 테니.
살포시 내렸던 그 눈은
나에게
설렘과 환상만을 남긴 채
사라져버렸다.
내 마음에 입 맞추고
이대로
사라져버린 너처럼.
모래 그림
어느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고 있어.
어느 날부턴가
자꾸만
빛깔 고운 바윗덩이가 굴러와.
자꾸만
예술가의 가슴을 두드려.
흐르는 눈물은 사파이어의 파랑
공허한 외침은 안개의 회색
그대의 목소리는 메마른 갈색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는
루시퍼의 검은색…... 바위를 갈아서 모래로 만들어.
가장 고운 말보다
더 고와지도록
원래 고운 것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고와지도록
자꾸만 바위를 갈아서
모래로 만들어.
손아귀에 잡힌 모래가
마치 비단이라는 착각이 들고나면
이제 예술가는
모래 그림을 만들어.
다 만들고 나면
사람들은 모래 그림을 칭찬하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하지만
예술가는 기쁘지 않을 거야.
전혀…... 예술가가 원했던, 정말로 바랐던
붉은빛 모래는
없기에…...
나쁜 사람
새하얀 천사의 날개를
접는다.
나의 어깨에서
사정없이 뜯어버린다.
이 순간이 아플까, 그 흉터가 괴로울까.
마음이 그 모습을 보고
차갑게 비웃는다.
지금 이 순간, 고통스러워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밖에는 없을지니.
오늘부로 시간을 헨다.
시간이 세월이 되도록 헤고나면
그 앞에 내가 서 있을 수 있을까.
그대 생각하며
나의 펜촉이 춤을 출 때마다
검은 눈물을 종이 위에 남길 때마다
나는 종이 한 장 만큼
작은 시 하나 만큼
그대 앞으로 걸어가.
내가 걷게 될 그 길이 책이 되어
토지? 아리랑? 태백산맥? 보다 길지라도
마지막 페이지 그대에게 닿아
그대 나를 첫 장부터 읽어준다면
읽어줄 날이 온다면
나는 써 내려 가.
그저 써 내려 가......
오늘 밤 나의 창가에
한 번도 본 적 없던 손님이
찾아와
나에게 속삭여.
나에게 검은 마법진을 줘.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 속삭여.
내가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악마는 답했어.
‘단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마법’
나에게 그 사람의 이름을 쓰라고 해......
사삭사삭 싹.
그냥...... 찢어버렸어.
근데, 난 더 놀라운 제안을 하나 해.
“악마야, 너를 먹을게. 내 속에 살아.”
악마의 불멸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오늘 밤 나는 다시 태어나......
시커먼 깃털들 속에 남은
유일한 솜털
새하얀 그 하나.
그대를 저주할 수 없기에
내가 악마가 돼 오리다.
어려운 책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다.
희고 단정한 그곳의 불빛이
나에게만
어두운 밤 네온사인으로 보인다.
책장들 사이로
깊이, 더 깊이 들어간다.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도록
깊이 들어간다.
책의 향기, 종이 한장 한장의 숨결이
농익은 술의 향으로 느껴지고 나면
어려운 책 하나
손에 잡고 읽기 시작한다.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익혀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서
그대 나오는 꿈의 의미를
찾기 위해
깊은 상념에 잠길 적에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찾아가
나체로 선을 본다 한들
부끄러울까.
결국 육체조차도 허례허식,
그저 정신이 입고 있는 옷.
벗어던지고
나의 영혼만 고이 모아서
작은 팬던트에 담겨서
그대 목에 걸린 채로
살아갈까.
장자의 꿈속에 흰 나비 되어
정철의 <사미인곡>속에 호랑나비 되어
(차라리 씌여디어 범나비 되오리다)
하얀 하늘에
고고한 검은 바람이 부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릴까.
나를 닮은 깨진 술잔에
어려운 책의 구절들을 담아
들이킨다.
“바텐더, 여기 어려운 책 하나만 추천해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그거 좋지.”
“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을 알려줄까?”
“뭔데?”
“사랑에 관한 책.”
“허, 그거? 너무 독해...”
성명 : 신은서
e-mail : strupina20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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