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회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 '피카소의 여인이 흘린 울음의 무게' 외 4편

by 이오 posted Apr 04,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피카소의 여인이 흘린 울음의 무게

 

피카소의 여인이 쓴 붉은 모자에는

뜨겁게 타오르지도

차갑게 숨을 죽이지도 않는 보랏빛 꽃이 피어나

볼을 타고 내리는 그녀의 울음은 노랗게 번지곤 해

턱 선을 따라 흐르는 눈물방울은 이어지지 않아

네모난 자국을 남기고

너는 말라비틀어진 이야기를 써 내려가

 

투명한 손수건이 비추는 초록빛 입술

- 다문 입술 사이 감춰진 슬픔을 가늠해

절제된 몸짓 사이 가려진 감정은 정열,

타오르는 정열이기에

붉은 꽃을 피워 올리는 걸까,

벽면은 슬픈 울음으로 젖고

가녀리게 떨리는 몸의 공명과

기이하게 뒤틀린 얼굴을 한껏

클로즈- .

 

피사체의 흔들림,

망막에 맺힌 상은 또렷하지 않아

나의 물음은 꼬깃꼬깃 손수건 위로 그려지는 편지

 

-울지 말아요. 그대, 울지 마

늙어가는 주름이 당신의

천명이라는 것이, 아직까지 슬픈 이야기로 남는 건가요.

 

여인의 울음을 저울질하며

엄마를 닮은 여인에게 난 속삭여

어린 날의 기억을 닮은 그녀의 울음은

외롭게 번지는 천진난만한 노랑.

 

피카소의 여인은 아직도 울고 있고,

난 그 여인의 울음의 무게를 재고 있어.

 

    

 

달의 그림자

 

스치듯 바라본 햇살이 눈부셔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그림자에 그 찬란함이 그리워졌습니다

영원할 듯 붉게 떠오른 해는

하얀 꽃을 피워내다 다시 핏빛으로 저문 지 오래

남은 밤에는 달만이 좁은 방 팔 촉 전등마냥 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달빛은 눈부시지 않아,

오래 보아도 미동도 없는 까닭에.

 

아침,

태양에 빛에 잠식당할 그 빛에 질려

내리는 빛을 거부하고

깊어가는 밤사이

달이 미처 밝히지 못한 밤의 여백이 깊어질수록

밝은 열정을 허공에 그려봅니다

 

다시 아침이 오면

길도록 떠 있길 바라

사라지는 태양으로 다가서 보아도

잡힐 듯 커지다 가늘게 갈라진 수평선 사이로 저무는 그대

야속한 마음이 들어 나는 다시

공허한 이불을 덮습니다

 

터벅,

태양을 찾아 더듬거리는 두 눈동자는 지쳐

스러지는 빛 사이로 보이는 것은

어른거리는 달빛.

기다림에 지쳐 뒷모습만을 비추던 달을 바라보았을 때야

나는 알았습니다

 

곁을 머무는 것은 늘 달, 이었다는 것을

곁에 있기 위해 센 빛이 내리쬐면

하얗게, 하얗게 자꾸만 물든다는 것을.

 

그림자가 지워지는 밤입니다.

    


 

심야의 앨리스

 

앨리스, 앨리스의 하늘빛 치맛자락이

노랗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담으면

붉은 표지의 이야기는 시작돼요

 

단어놀이를 좋아하는 심술궂은 고양이의 안내

목소리만이 메아리치는 곳에서 떠나는 여행은

수년간 잠들어있던 포악한,

드래곤을 무찌르기 위한 여정은 아니야

 

하얀 시계토끼와 손잡은 모자장수의 티타임.

도도새와 인사하며 핑크빛 머그컵을 채운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한 이야기

붉은 여왕이 칠한 장미 한 아름 안고

스페이스 일- 새긴 카드병정과

좋아하는 색의 꽃을 토론하는 시간

곰방대 뻐끔대는 애벌레가 건네는 약 한 모금에

독수리와 수다라도 한 줌 떨 수 있는.

 

천진난만한 이야기, 오래된

버들나무 아래 깊게 잠긴 이야기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면

여행은 끝나고 앨리스의 하얀 앞치마엔

얼룩덜룩한 추억이 새겨져요

지난이야기가 한낱 두 시간 사이의 꿈일지라도

초록이 돋아나는 들판으로 되돌아와

바래지 않은 오래된 가죽 표지 덮으며

꿈에서 깨어난다 해도 좋아,

 

붉은 여왕이 매어준

허리의 붉은 리본을 보며 후회는 하지 않도록

하얀 인사를 건네요

 

, 하지만 짧은 하얀 숲을 걸어가는 앨리스.

 

 

 

아몬드나무, 사랑, 지나간 열정과 너

 

고흐의 아몬드나무가 피어나는 계절

청록의 배경 앞

가지가 진하게 뻗어나가고

꽃송이는 하얗게 물든다

12잎 소보록 쌓은 채 이따금 부는 바람에

엉덩이를 흔들며 깊숙이 숨긴 암술의 끝자락을 내보이는 모습은 봄,

봄을 붉게 물들이는 색

노란 꽃가루는 알코올 마취제 같아,

한껏 취해 춤추고 있으면

정장 차려입은 바람이 이리저리를 분주히 걷는다.

그는 화려한 조명 사이 손목을 잡아끄는 웨이터

끈적이는 재즈 음악이 들려오고

뻐끔거리던 입술이 포개지다

붉게 물드는 순간.

 

하얀 몸 위로 자꾸만 누런 얼룩이 묻는다 해도 좋아

너와의 최초의 악수를 기다리는 꽃송이들은

배경을 닮은 초록빛 옷을 자꾸 벗고

남은 암컷의 맨홀과 만난

수술의 더듬거리는 손짓이 깊은 곳까지 들어올 때면

한껏 벌어진 꽃잎,

가지를 타고 오르는 그 떨림,

조용히 맴도는 날카로운 비명

촉촉하게 물드는 그 비명,

등줄기를 따라 흐르는 땀방울

격정으로 타오르는 격렬한 시간

 

새롭게 잉태되는 이야기가 끝나면

지친 꽃잎을 늘어뜨린 채

아몬드 나무는 활짝 꽃을 피운다

 

 

         

낮은 집

 

나는 그림자

 

골목까지 햇빛 한 줄기 바라는 것은 사치였나요

, 뚝 비가 새는 얇은 슬레이트 지붕

좀처럼 햇빛은 드러나지 않고

골목의 낮은 어둡기만 합니다

 

골목을 옹기종기 이루는 집들은 모두

다 헐어가는 집입니다

작게 지어진 집, 문이 삐걱이는 집

새까만 집, 여러 색 섞여 회색을 그려내는 집

집은 제 주인을 닮았고

하얀 고층아파트에 일조권 한 장 받지 못하고

흙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바람에 참문이 덜컹였지만 미처

창문을 뜯어고칠 수는 없는 까닭에

신문지 두어 장으로 하루를 버팁니다

그래, 하루를 지내지는 않고.

 

아파트는 해마다 허물을 벗고 높아지는데

골목은 저 홀로 도돌이표

낡고 진부한 이야기의 반복.

 

인적 뜸한 골목은 세상 가장 낮은 곳

그래서 햇빛은 골목을,

미처 비추지는 못하는가 봅니다.


                                            

                                                                                         이소현 / leesohyun11@naver.com / 010-2049-2718


Articles

46 47 48 49 50 51 52 53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