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
수건이 되고 싶다.
그렇게 너의 몸 구석구석을 누비고 싶다.
걸레처럼 구겨져
빨래통에 담겨 잠시
인고의 시간을
보낸다. 그쯤이야.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기분좋은 냄새들과 만난다.
약간은 축축해진 몸으로 탁탁털려
그동안의 죄들을 씻어내고,
또 날려보내고.
쨍쨍한 날
팽팽한 빨래줄에
간신히 매달려
바람에 출렁이고 싶다.
그러다 너의 배경이 되고,
다시 너의 몸이 되고 싶다.
<검은 고양이>
너의 얼굴을 찍을 재간이 없다.
너는 너무 빠르기도 하고,
특히, 너무 검다.
너는 그림자보다도 검다.
시가 그렇다.
나는 너의 얼굴을 써낼 재간이 없다.
너는 나보다 빠르고, 검다.
결정적으로, 나는 밤을 사랑한다.
<가을전어>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달이 보였다.
기울어진 달이 보였다.
마음도 기울어져 담고 있던 것들이 다
쏟아져 버렸다.
그렇게 가을 전어를 먹었다.
<사랑의 온도>
따뜻한 물 샤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사랑의 온도를 잊는다.
그러다 어떤 계절과 맞닥뜨리고,
퍼뜩 소름이 끼치다가,
샤워 후 덜 닦여
등에 남아 있던 물방울처럼
주륵 흘러내리는 것이다.
<바람>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지만 함께 할 수 없다.
머물 수 없다고,
사랑마저 할 수 없다고,
단정짓지 마라.
바람이 스치듯,
내 귀에 대고 말한다.
그리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