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여진 시
어린 시절,
처음 시를 접했을 때
시의 그 순수함이 좋았다
그 예쁨이 좋았다
모를 아쉬움에
마냥 읽기만 하던 것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순수하게 자연이 좋아서
자연을 사랑해서
그에 대한 황홀을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공들여 시에 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그 시를 쉽게 보았다
'시 그거, 아무나 쓴다 야'
그제야 난 알았다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을
이제 나는 나의 시를
비유와 대조로 채워나간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아닌
비판과 풍자로 채워나간다
비로소 난 인정받았고
어려운 말로 가득한,
쉽게 쓰여진 그 시는
사람들의 갈채 속에
상을 거머쥐었다
세상의 인정은 받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인정하는 그 눈빛에
내 입꼬리가 미소 짓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날
나라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매서운 총, 칼이 오가고
인간의 목숨은 단지 전리품
날이 선 세상이었다
남은 건 잿더미와
뭉툭한 돌 뿐
날이 지나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언 60여 년
음습한 그 불모지에
푸른 싹이 돋더니
풍요로운 각진 도시 어느덧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 있다
차가운 0과 1이 오가고
인간의 목숨은 단지
사진,
기삿거리,
돈벌이,
그리고 가벼운 무언가
날이 선 세상이었다
밤은 오지 않고
오늘도 모니터를 사격하는
열 자루의 총, 칼
우린 실패하고,
다시 성공했지만
우린 성장하고 또,
퇴화했다
귤
없을 때 문득 보고 싶고
있으면 자꾸만 손이 가고
얼굴이 찡그려지다가도
결국 날 웃게 하는 너
손끝을 물들여도 좋아
그마저도 기분 좋으니
통통한 너의 모습이 좋아
난 널 항상 사랑해
사계절을 너와 함께 하고파
매겨지는 값어치는 의미 없지
더 높은 이들은 많지만
내게 넌 언제나 1등인 걸
쉴 새없이 톡-톡- 터지는 널 보면
정신은 아득해, 감각이 멀어버릴걸
이렇게 아껴 널, 나는
귤 같은 널, 나는
쉴 수 없는 밤
습관적인 고통에
분노와 체념 사이의 줄다리기
그 질긴 줄은
끊어질 줄도 모르고
어느새 내 목을 휘휘- 감아
간당간당 내 목숨줄 끊으려
등줄기에 땀이 송골,
맺히는 새벽 시작에
불안한 눈동자 굴려야
모두 깬 아침이 올는지
눈꺼풀은 천근만근
힘든 아침이 오히려
우산이 없는 날
쏴아- 쏴아-
떨어지는 그 비를
우산이 없는 난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어깨 끝이 젖기 무섭게
차갑게 떨어지는 그 비는
내 손등, 발등 위를
세게 내리쳤다
생쥐 꼴이 되어서
집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가방을 열었고,
그 속에는 우산이 있었다
서럽게 울었다
왜 그때 찾아보지 않았을까
왜 내 생각만으로
날 이리도 적셨을까
어쩌면 내가
빗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에도
미처 보지 못한 낡은 우산꽂이에
작은 우산 하나 있었을지 모른다
매일 해가 뜰 순 없다
내일은 비가
모레는 더, 큰 비가 내릴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비를 맞은 건
내린 비 탓이 아니다
우산이 없는 날에도 난
충분히 젖지 않을 수 있다
이승미 / mi_799@naver.com / 010 3460 1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