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차 창작콘테스트 시 공모/쉽게 쓰여진 시 외 4편

by 글쓰는아띠꽃 posted Apr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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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




어린 시절,


처음 시를 접했을 때


시의 그 순수함이 좋았다


그 예쁨이 좋았다




모를 아쉬움에


마냥 읽기만 하던 것을


직접 쓰기 시작했다


한 편의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순수하게 자연이 좋아서


자연을 사랑해서


그에 대한 황홀을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껏


공들여 시에 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그 시를 쉽게 보았다


'시 그거, 아무나 쓴다 야'


그제야 난 알았다


'좋은 시'를 쓰는 방법을




이제 나는 나의 시를


비유와 대조로 채워나간다


아름다움과 사랑이 아닌


비판과 풍자로 채워나간다




비로소 난 인정받았고


어려운 말로 가득한,


쉽게 쓰여진 그 시는


사람들의 갈채 속에


상을 거머쥐었다




세상의 인정은 받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인정하는 그 눈빛에


내 입꼬리가 미소 짓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나라는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매서운 총, 칼이 오가고


인간의 목숨은 단지 전리품


날이 선 세상이었다




남은 건 잿더미와


뭉툭한 돌 뿐


날이 지나간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어언 60여 년


음습한 그 불모지에


푸른 싹이 돋더니


풍요로운 각진 도시 어느덧




사람들은 죽음의 문턱에 있다


차가운 0과 1이 오가고


인간의 목숨은 단지


사진,


기삿거리,


돈벌이,


그리고 가벼운 무언가




날이 선 세상이었다


밤은 오지 않고


오늘도 모니터를 사격하는


열 자루의 총, 칼




우린 실패하고,


다시 성공했지만


우린 성장하고 또,


퇴화했다









없을 때 문득 보고 싶고


있으면 자꾸만 손이 가고


얼굴이 찡그려지다가도


결국 날 웃게 하는 너




손끝을 물들여도 좋아


그마저도 기분 좋으니


통통한 너의 모습이 좋아


난 널 항상 사랑해




사계절을 너와 함께 하고파


매겨지는 값어치는 의미 없지


더 높은 이들은 많지만


내게 넌 언제나 1등인 걸




쉴 새없이 톡-톡- 터지는 널 보면


정신은 아득해, 감각이 멀어버릴걸


이렇게 아껴 널, 나는


귤 같은 널, 나는





쉴 수 없는 밤



습관적인 고통에


분노와 체념 사이의 줄다리기


그 질긴 줄은


끊어질 줄도 모르고


어느새 내 목을 휘휘- 감아


간당간당 내 목숨줄 끊으려




등줄기에 땀이 송골,


맺히는 새벽 시작에


불안한 눈동자 굴려야


모두 깬 아침이 올는지


눈꺼풀은 천근만근


힘든 아침이 오히려






우산이 없는 날



쏴아- 쏴아-


떨어지는 그 비를


우산이 없는 난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어깨 끝이 젖기 무섭게


차갑게 떨어지는 그 비는


내 손등, 발등 위를


세게 내리쳤다




생쥐 꼴이 되어서


집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가방을 열었고,


그 속에는 우산이 있었다




서럽게 울었다


왜 그때 찾아보지 않았을까


왜 내 생각만으로


날 이리도 적셨을까




어쩌면 내가


빗속으로 뛰어드는 순간에도


미처 보지 못한 낡은 우산꽂이에


작은 우산 하나 있었을지 모른다




매일 해가 뜰 순 없다


내일은 비가


모레는 더, 큰 비가 내릴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비를 맞은 건


내린 비 탓이 아니다


우산이 없는 날에도 난


충분히 젖지 않을 수 있다




이승미 / mi_799@naver.com / 010 346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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