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둥지
자식은 철새와도 같고
부모는 둥지와도 같다
자식이 어찌 그 포근함과 따뜻함을 모를까
허나 시간이 가고 게절이 바뀌어 때가 오면
떠나가는 것 또한 이치니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 떠나간 그 철새가 둥지를 지을 때서야
비로소 알게되는 것이지
자신의 둥지가 어릴적 그 둥지라는 것을
자식의 날개를 달아줄 둥지이면서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의 튼튼한 둥지라는 것을
떠나가는 것이 이치일지라도
돌아보는 것이 도리라는 것을
어디 어릴적 둥지가 따뜻함 뿐이었을까
간절함이었고 소망이었으며
날개의 원동력이었다
그제서야 철새는 북쪽을 바라본다
출입구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가는 입구이다
학업의 출구는 대학 졸업
입구는 사회 진출
외로움의 출구는 함께함
입구는 새로운 관계
연애의 출구는 결혼 혹은 이별
입구는 식장 입구 또는 홀로 여는 현관문
인생의 출구는 죽음
입구는 천국의 문
희극일수도, 비극일수도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입구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토끼와 거북이
가방에 필통과 수저를 가지고 다닐땐
토끼도 나쁘고 거북이도 나쁘다 말했다
나쁜 토끼를 깨우지 않은 나쁜 거북이
달리기 시합의 참가자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거북이는 안 깨운 것이 아니라 못 깨운 것을
엉금엉금 한 걸음씩 떼더라도
꾸준히, 부지런히 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고지를 놓지 않고 바라봐야만 하기에
토끼를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용서를 구하며 정정한다
나쁜 거북이도 아니고
착한 거북이도 아니고
위대한 거북이라고.
"자신합니다."
자만과 자신 사이는
색이 바랜 실선
자만이 말한다
자신한다고
그 떵떵거림에 움츠러들어
희끄무리한 실선을 넘을 땐
뒤돌아보지 않는 도도함을 가지고 간다.
위태로운 몇 걸음과 함께 껍떼기가 벗겨지고서야
비겁한 자만이 실체를 나타낸다
비겁한 자만은 섣부른 실패를 남기고
겸손한 자신은 든든한 텃밭을 간다.
갓스물
교복을 몸에 걸칠 땐
그것이 어떤 멋인지 알지 못했다
성인의 큰 옷을 참 멋이라 불렀다
교복을 벗고 성인의 큰 옷을 입었을 때야
교복의 활기찬 멋이 보였다
내가 다시는 내지 못할 멋이
말간 눈으로 여기저기를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관찰하고 방황할때
아직은 그 옷이 너무 커서 질질 끌고다니는
내가 보인다
그런 내가 두렵다
눈커풀을 들기 힘들어져도
그 옷이 너무 클까봐
(이수진/myidissj@naver.com/010-2661-8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