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후라이 외 4작

by 펭귄 posted Apr 3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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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후라이


달걀을 깨뜨렸다.

콰직-

깨진 균열 사이로

껍질은 토하듯이 내용물을 뱉어냈다.

 

지글지글

달걀이 익었다.

불투명하게 엉켜있던 토역물은

점차 뚜렷한 흰색과 노란색이 되었다.

 

같은 세상에서 나와

왜 다른 색이 되었는가

 

치지직 치지직

달걀이 굳는다

흰색과 노란색은 점차 굳어진다

그리고 조금씩

프라이팬에 뿌리를 내린다

 

순간 화가 났다

바닥에 엉겨 붙어

옴짝달싹 안 하는 모습에

 

젓가락을 들어

노른자를 쿡 찔렀다


프라이팬 세상에

노른자와 흰자가 섞여

가득 채운다

 

이토록 간단한 것을





편지는 무엇으로 쓰이는가


편지를 써 본 자는 안다

꺼내놓은 흰 편지지에 물드는 투명한 진심과

처음 펜을 집을 때의 시큰시큰한 떨림과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는 손의 눈물어린 땀과

구겨진 채 휴지통 안에서 자라는 사랑의 고해


진심과 소망과 행복의 격정 그리고

두려움으로 안달하는 동굴 속의 시간

이것조차 못하는 나에 대한 자책과

그저 불안함과 불안함과 불안함.......


한숨으로 봉한 편지를 집으며 가다듬는 호흡과

너에게로 향할 때 새까맣게 타버리는

재떨이 같은 마음


편지는 무엇으로 쓰이는가

편지를 써 본 자만이 안다







개벽


노을 빛 하늘을 그리려고 했다



강렬한 붉은 색으로


불이 붙은 도화지


 


그 도화지가 너무도 뜨거워


파도 빛 바다를 그리려고 했다


 


격동 치듯 출렁이는


도화지 속 심연


 


그리고 그 경계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여


어느새 피어난 보라 빛 밤하늘


 


뜨거운 태양은 지고


역풍은 가라앉은 도화지에서


 


믿기지 않는


뭉롱하고 잔잔한


보라 빛 새벽이


태어나고 있었다







꽃밥


꽃을 보고 있으면


꽃잎을 한 잎 한 잎 따다가


쏘옥 먹고 싶어 져요


 


무릎 치에 엎드려서


양손으로 턱을 괴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깔깔거리는


진홍색 철쭉 어린이들


 


팔을 활짝 벌리고


솜잎을 온몸에 수놓은 채


우아한 향으로 유혹하는


아찔한 라일락 언니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듯 살랑살랑


수줍게 왈츠를 추는


부끄러운 야생화 신부까지


 


철쭉 한 잎


라일락 한 잎


 야생화 안 잎


 


한 잎씩 먹으면


저도 저렇게


사랑스러울까요




명화


내 눈 앞에 큰 액자가 걸려있다

엄지와 검지로 만든 네모난 틀 안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다


밑그림으로는

투명한 하늘색에

가끔씩 드문드문 흰색 물감

그 사이로 보이는 눈부신 반짝거림

아이의 보조개 같은 산들바람색

스치듯 지나가는 나뭇잎의 녹색


그 위에는

넓게 드러누운 초록색 바람개비들

가운데에서 춤추는 쌀알색 꽃들

위에서 내려다보는 엄마미소색의 나무들


순간 웃음이 터져나와서

액자 속 세상으로 뛰어들어왔다


나는 지금 다른 세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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