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
실룩거리는 바다가 품에 안길적마다
안개 허벙에 아늑히 포위당하고 만다
밤도와 갈증하던 목마름
한바탕 벌컥벌컥 마셨으면 좋으련만
싸늘하게 에우는 갯바람에
코끝이 알알하게 매워진다
곰솔 가지마다 표류하던 하루해가
시름시름 사위어가는 그리움
끼륵끼륵 앓던 갈매기는
시린 가슴 다소곳이 쓸어내린다
내 슬픔 덜라고 찾아온 바다에
속마음까지 탈탈 털리고 나면
덧난 생채기에 알큰히 젖고 만다
텅 빈 하늘 베고 곡기 끊은 폐선 위로
창백한 별빛 소복이 쌓이고
더금더금 고인 시름 부려놓으며
아스라이 길들여져 가는 여윈 시간들.
이방인의 발견
구겨진 세월은 언제나 내 편이 아니었다
상상의 폭을 재단하며 억지로 박제하던 나는
늘 허기진 사고의 촉수를 뻗친다
문명의 그늘에서는 언제나 궁금증만 늘인다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다른 정답을 갈구하듯이
이분법적 사고의 현실과 관념 사이
우리는 늘 갈증 하는 이방인 이었다
투박한 시간도 때로는 허방다리에 갇힌다
타고 남은 자투리 마음 기댈 곳 없이
파고드는 그리움은
시간과 공간의 평행선을 그려간다
길 위에는 세모난 얼굴, 네모난 얼굴,
해맑게 웃음 띠는 동그란 서로 다른 얼굴들이
어께를 부딪치듯 마주친다
거기엔 각각의 고유한 언어가 따라다녔다
만나서 하는 일은 감추어진 비밀을 찾는다
가끔 새어나오는 말 품성이 지적이고 고아하다면
얼마나 사람이 사람다울까
세상을 통째로 떠 맡겨도 밑지지 않는 사람
서늘하던 가슴이 안온히 데피워지는 그런 사람.
별
혹여 신이 걸쭉하게 최면이라도 건다면
쨍하고 우르르 쏟아질 것만 같은
광활한 우주의 유희본능
팔을 뻗어 손가락을 쥐락펴락하면
몇 개쯤은 뭉클 만져질 것만 같은
광활한 우주의 별 밭
예전에 있던 그 자리에
북두칠성은 익숙하게 자리를 지키고
샛별과 시린 눈 맞추면 그리움이 돋는다
어떤 고운비밀 품어있기에
사랑하는 사람들마다 뭇별을 헤아린다
내가 예전에 가슴 저미며 그랬던 것처럼
혹여 신이 어느 날 나를 부른다면
어느 별에서 만나자고 할까
밤이면 밤마다 가슴 뛰는 별을 찾는다.
눈동자
큼지막한 눈빛 마주치노라면
미안한 마음만 일렁거린다
너부죽한 볏바닥으로 콧구멍 핥아대면
가석한 애옥살이에
내가 쉬 알아들을 수 없는 짠한 몸짓이려니
살뜰한 우리 집 누렁이와 약속 하나 했다
내가 장학생 되는 것
죽을 만큼 열심히 공부하란다
자기 한 몸 아끼지 아니하듯
깊은 산 오솔길 돌고 돌아
무지근한 땔감나무 등짐 그득 지면서도
내 눈치 알뜰히 살피던 그 눈동자
미안한 마음에 등마루 쓱쓱 쓰다듬어주면
꼬랑지를 살랑살랑 내젖는다
살찐 꼴 한 아름 베어다
콩비지 듬뿍 넣어 여물을 쑤어주면
하고 싶은 말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혀있다.
시간의 영역
너는 언재나 잊어진 과거 속에 머무르며
내 마음 흥건히 적시어 왔다
소낙눈 내리는 날이면 눈사람처럼 지워지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서럽게 맞을 테면
알싸한 가슴 쓸어내리며 시리게 앓아야 했다
푸르던 날 언제나 내편이 되어 기다려 주었던
너의 깊은 생에 내 인생 버무리어
덧없는 세월의 덫에 갇힌 박제가 되었나 보다
기억은 늘 허기진 시간만을 저물도록 재생한다
추월만 당하는 구겨진 세상은
몸서리치도록 깨금발로 트림을 해대지만
회색 화석이 되어간 세월의 흔적 보듬으며
자투리 시간마저 요모조모 재단하여
익숙하게 길들이지 못한 나는 언제나 나그네였다
인간은 늘 자기 부피의 몇 갑절이나
애욕을 잉태하고 살아가지만
때로는 그 무게에 갇히어 수없이 뒤뚱거린다
그 시간
그 세월
그런 세상도 쓰다듬고 초월하라며
신은 종교를 만들어 인간에게 선사했다.
박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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