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창작 콘테스트 시 공모 / "그 여자의 집" 외 4편

by 부산글쟁이 posted Jun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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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 : 그 여자의 집

 

지하철 막차 종착역에

무표정한 얼굴로 내리는 한 여자

두 다리 후들거리며

달동네 꼭대기 집으로 올라가는 그 여자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다

반지하 단칸방 여는 순간

얼어붙은 냉기가 온 몸 감싸고

날짜 지난 신문지 위에 맥주병들만

그 여자의 인기척을 반긴다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있다

외롭고 어두운 밤을 견디는 그 여자

그 여자는 매일 밤 인생을 써내려간다

헛헛한 인생을 감싸 안아줄 꿈을 그리는

그 여자를 알고 있다



2. 제목 : 의자 하나

 

도심 한복판

버림받은 의자 하나

창피도 굴욕도 없다

 

비둘기 한 마리의 푸념을

가만히 조용히 경청한다

 

두 다리 멀쩡할 때

버림받고서야

혼자를 안다

 

뼈를 깎는 고통 감내하며

현생을 살았으나

바래진 피부가 눈에 띌 때쯤

버려졌을 것이다

 

분주했던 전생을 되새김하며

혼자 앉아 있다 덩그러니

 





3. 제목 : 나의 아버지

 

홀어미의 큰 아들로 자라서

태어난 지 스무 해가 되자마자 배를 탔다

허벅지에 바늘을 찌르며 견딘다는 청승의 밤들을

바늘보다는 노를 저으며 긴 밤을 견디고 건넜다

늙은 어미 애끓는 비명에 몸살하고

길가에 난 풀떼기 뜯어 먹고 버티어

파도가 집어 삼키는 새카만 바다를

고향보다 자주 넘나들었다는 아버지

어린 자식 울음소리에 책임지고

기꺼이 배를 타고 버티는 나날들

만 가지 재주 부리던 그 작은 몸집에

세월이 남긴 무심한 상처들이 빼곡하다

감히 스치기도 죄스런 아버지의 피멍들이여

생이 다 이런 것인가







4. 제목 : 계절이 겹치는 시간

 

오월의 태양이 눈치 보며 숨죽이는 낮

난데없는 천둥번개 존재감 드러내고

먹구름들 이때다 싶어 모여 비를 뿌리고

아닌 낮 중에 날벼락이 다녀가고

평온한 뭉게구름 가족 친척 나타나서야

세상은 다시 고요 속에 묻힌다

밤새 내리는 폭우 속에서 제 시간을 준비하는 것들

계절이 겹치는 시간, 그 사이에

설렘을 안고 튀어나오는 것들이 있고

마음을 앓으며 숨어야하는 것들이 있다





5. 제목 : 시집

 

우리 집 시인 내 아버지가

직접 읊어주는 자작시를 듣고 자라

머리가 커서도 시집만 끼고 살았더니

어느새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 시집 속 남자들과

매일 밤 화끈한 정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하지만 현실 속 어느 남자와 결혼했다

 

시집을 덮으니

외도를 했던 그 망할년은 온데간데없고

앞치마를 동여맨 참한 여인이 나타난다

 

숭늉 국물 간을 보다말고

책장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낙서 가득 낡은 책장에

아버지가 남기고 간 시집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빼곡하게

서로의 종이 가죽 맞대며 붙어있다

 

시집이 말을 한다

, 싱거워 -

 

슬그머니

입을 연 시집을 꺼내

몰래 읽는다

숭늉이 팔팔 끓고 있다

 























백지혜

010-3570-7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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