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의 봄 외4편

by 김형식 posted Jun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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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의 봄>

                 
60미터 전방, 식당가에선
붉은 행주치마와 뒤집개로 무장한 젊은 아낙 둘이 
전을 부치고 있었다
저마다 홀로 서 있는 그림자들의 배가
홀쭉해지는 정오였다
자글자글 식용유 끓는 소리

헌데 여기까지 들릴리가

바람의 손재주에 
퍼런 잎들을 뒤적거리며
노랗게 익어가는
초소 뒷터의 플라타너스였다

조금만 기다려, 곧 끝나니까

따가운 햇기름에
호박전 같은 잎새들이 
물컹물컹 익어가는 봄날이었다




<춤추는 여자>


얼마남지 않은 잎새들이
나무초리마다
낡은 속옷처럼 걸려있는 밤

건들건들 실바람에도 
그 여자는
빙글빙글 요요처럼 돌아야하고요

낯선 손이 색-
살품으로 시리게 들어오는 날엔
잠자리에 누이고 온 여린 얼굴들이 어려서
두 눈 꼭 감지요
흔들릴수록 제 얇은 팔뚝으로 쓸어안는,
손샅이 아무리 따끔거려도 그 둥지는
절대 못 놓는다네요

이번 밤만 지나면
파란 하늘에 새하얀 연고처럼
어린것들의 연한 울음소리 들려오겠지요




<검은 봉지>
-죽은 개

골목길 위
아스팔트 바닥보다 더 
거친
검은 개 한마리
맨홀 뚜껑을 그리며 빙그르르
돌다가
발자국도 없이 달려와서는
와락
신발코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구나
절뚝이는 다리
초승달처럼 감긴 
왼쪽 눈
축축하게 엉겨붙던 털붙이도 
벗어버렸으니, 이젠
맘껏 날아보거라
무덤 같은 언덕배기를 지나
잡초처럼 심어져 있는
양철 집들을 뒤로 하고
훨훨,




<어제>

아이를 찾습니다, 사내 아이
오후 두시쯤, 하늘 유치원, 근방에서, 실종,
목격자는, 유치원 입구, 벙어리 전봇대, 소년을 스친,
수많은, 무심한, 오늘의 사람들, 아니, 정확히는, 없음
유일한 단서, 기억처럼 흐릿한, 흑백, 입구의, CCTV 사진

어제처럼 생생한 실종사진 밑에 
후일담처럼 붙여진 실종 날짜 
2년전.

지구 멸망의 날짜처럼 아직까지
아이는 기별이 없다

발도
손도 쓸 수 없어

마음만 쓰는 오늘




<여든> 


병석에 누워 있는 당신에게 나는 
할아버지 팔씨름 한 번 하자 딴엔 
그것이 손을 잡기 위해 가장 손자 같은 변명이리라 


여전히 너른 당신의 빈손은 
알의 껍질처럼 내 손을 에우고, 나는
그 안에서 부화하려 몸짓하는 작은 병아리 


당신의 팔뚝에서 열렬히 환호하는 생을 바라보다가 문득 
겁에 질려 
회목에 힘을 놓는다 

이토록 간절히 

나는 
소년을 붙잡아 본 적 있던가 


유언처럼 맞잡은 
당신의 오른 손등으로 굽이쳐 흐르는 
청춘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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