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별투성이
가을날이 봄날 같아 주위를 돌아본다
계절의 밀회는 끝나지 않았구나
1.
나는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다
잇단 사랑은 아무런 위로도 없이 떠났다
⏤ 건네주지 못한 것이 있었다
2.
길 위에 소문이 들려왔다
아주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었다
지나간 사랑으로부터 그는 밤호수를 향했다고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의식처럼 느껴졌다고
3.
호수 앞에서 그는 옷을 벗었다
나체 하나가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갔다 밀회였다
자맥질을 하는 깊은 숨이 들려왔다
4.
그곳에 밀회는 또 있었다
사랑을 끝낸 별들의 헤엄, 아주 자유로운 소동!
유영하는 그의 곡선을 따라 별들이 걸렸다
가까이에 별 하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밀회였다
5.
한 동안 그는 어항 속의 별을 보며 지냈다
별안간 어항 속은 헤엄치는 별 하나로 별투성이였다
별 하나가 우리의 시절을 범해 온통 별투성이였다
다시 몇 개의 계절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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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습
너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너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나는 기다림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떤 외출은 역설적이다
돌아갈 곳이 없다
모든 기다림 또한 역설이다
부재하는 것으로 존재한다
아주 뚜렷하고 대단하게
저녁이 온다
너를 기다리는 일이 어느덧 나의 풍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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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호수
하나의 생으로 나서 하나의 별과 사랑을 나눈다
생애 그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일이 있을까
입술 끝에 가만히 물리는 별⏤
나의 별, 나만의 별, 나의 유일한 벗
내게 별과 사랑한 이유를 묻건
나의 별이 지상에 머물지 않아서요
생이 고꾸라져 복작한 지상의 일과는 외따로 머물러서요
결코 별이 빛나서는 아니다
단지 그가 저편에 머물러 주었기 때문이다
별에게 사랑의 이유를 묻건
저편에서도 답은 같을 것이요
내가 이편에 머무는 것이 그에겐 한 편의 토로였을 것이다
어둔 심중 별을 기다리다가 왈칵 쏟아져 흐르는 애수
무수한 별강에 오늘 나의 별은 보이지 않는다
혹, 별 오지 않아도 나는 영영 별을 향한다
한 두 점의 그리움으로 별과 나를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 사이를 헤아릴 수 있었다면 별과 나의 밤이 그토록 깊진 않았을 테요
별에게 나 역시 저편에 머무는 하나의 별이다
자못, 각자의 생을 척행해야 비로소 쓰담는 거리에 머무는 별⏤
오래도록 별과 내가 사랑하였건
그 별만이 이 편과 저 편에 비치는 서로의 호수요
서로에게 애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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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이 갸웃 호수에게
밤마다 어디를 가냐고 물으면 그는 아무 말 없이 신발을 꿰어 집을 나섰다
어떠한 밤을 보냈는지 귀가한 그의 신발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목이 말라, 물을 좀 줘
그는 오래 가물었던 땅처럼 벌컥벌컥 물을 당겼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가끔씩 그가 꿈속에서 호수, 나의 호수라고 중얼거렸기에
나는 그가 목이 마른 짐승처럼 느껴졌다
잠에서 깬 그는 또 다시 나갈 채비를 하였다
그의 손에는 낚싯대가 들려 있었다
―어디를 가오?
―밤과 어울리러……
그날은 밤이 깊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호숫가에 앉아 오랜 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무언가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낚싯대를 드리우시지 않고요
허망하게 그가 말했다
―이 호수에 이는 고독이란 것은 낚싯대로도 잡히지 않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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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막에서 총을 겨누고
1.
사막에 사자는 어울리지 않아
아니 그게 인생이라면 퍽이나 어울리지
2.
사막에서 사자에게 잡아먹힌 사람의 이야기 알아?
내가 듣기론 잡아먹히지 않았다던데
그 사람, 총을 가지고 있었다고
아주 거대한 총알이 있었다고 해
사자의 몸통을 순식간에 관통하는 총알
3.
그 사람은 사냥꾼이었나?
아니 그럴 주제가 못되는 사람이야
4.
어떻게 알아?
내가 그 현장에 있었으니까
5.
당신이 그 사람을 구해줬나?
글쎄, 구해준 건지는 잘 모르겠네
나는 다만 그 이에게 달려드는 사자의 등허리를 향해
총을 겨누었을 뿐이야
6.
오발이었나?
우리 둘 다 오발이었더군
성명 : 김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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