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져도>
이세현
바람이 불어서 벚꽃을 다 가져가도
우리는 서운해 하지 맙시다.
벚꽃이 떠난 자리에 새로이 싹튼 잎이
우리의 눈을 푸르르게 해 줄 테니까요.
비가 내려 벚꽃을 멍들게 해도,
우리는 속상해 하지 맙시다.
벚꽃은 져도 분명 우리 눈에 들어온
푸르름은 더욱 푸르러질테니까요
<건투를 빕니다>
이세현
돋보기를 낀 지하철 행상인이
야외용 돗자리 38000원인데
10000원이라며 소리친다.
그 뒤에서
맹인 아저씨
지팡이 톡톡거리며
잔돈바구니를 들고 걸어온다.
서로를 지날
때,
각자 사느라
서로를 보지는 못했지만,
서로에게 말은 안했지만,
그 공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형씨, 오늘도 건투를 빕니다.
<고요히, 봄>
이세현
산 속의 눈은 갑자기 웅 하고 녹아
시냇물이 되지 않는다.
벚꽃은 요란하게 피지 않는다.
나비는 어수선하게 춤을 추지 않는다.
쪼르르, 살그머니, 스르륵
프스스, 사락사락, 후루룩
그렇게 새벽이 꺠지고
봄의 아침은 살그머니 걸어온다.
그렇게 봄 햇살은
우리의 속살을 쓰다듬는다.
그러면 우리는 그렇게 웃을 뿐이다.
이세현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정말 갑자기 사라지면
과연 얼만큼 슬플것인가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있는 어머니
식탁에 앉아서 혼자 저녁식사를 하는 아버지
삼남매가 커가면서 깊어지는 두 사람의 주름살
당연하다는것은
모름지기 없어서는 안될 것인데
한때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뒤돌아보면 아무 것이었다.
늦은 밤
방안에서 문득
돈오한 나는
방문을 열어
당연하게 소파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잔다"
<지금>
이세현
찬 달빛이 거리로 쏟아져
낮 동안에 덥혀왔던 공기를
식혀줄때까지
그저 기다리겠습니다.
그저 지금의 연속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항상 지금입니다.
추운 겨울날 밤
함께 몸을 포개었던 때도 지금,
늦여름 밤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었던 때도 지금
지금이란 아주 긴 선 이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있는 지금도 전혀 아쉽지가 않습니다.
언젠가 미래의 지금쯤, 그러니까 7월의 밤엔
그때의 흘러가는 지금을
함께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찬 봄의 아침공기>
이세현
봄의 새벽아침 공기는 왜 차가울까요?
점심즈음 되면 따뜻해지는데 말이죠.
그건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나는 당신에게
따뜻함을 선물하려고, 그 따뜻함을
모아두느라고 그랬답니다.
이럴 때 보면 봄은
어버이날 엄마아빠께 드릴
선물을 위해
동전 한푼 두푼 모으는
어린 막내 아들 같습니다.
사실 이런 것이 진짜 흐뭇한 것이죠.
<돼지>
이세현
돼지는 태어날 때부터 삼겹살,목살이었을까
태어날 때부터 고기가 되려고 태어났을까
누군가는 선생이 되고,
누군가는 과학자가 되듯
돼지도 자기의 뜻이 있었을 텐데
그 뜻이 자신의 떨어져 나간 살점이
불판 위에서 익혀지는 것은 아닐 텐데
침 튀기는 인간의 입 속으로 들어가
살살 녹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텐데
돼지는 꼭, 삽겹살, 목살이어야 할까
돼지는 꼭 돼지고기여야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