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공모 접수합니다. - 해구 밑 외 4

by 이오 posted Aug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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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구 밑

 

해구 밑으로는 오래된 노을이

촘촘하게 가라앉고는 했다

둥근 잎사귀의 그물맥처럼

조각난 시간들은 물고기들처럼 부유한다고 했다

어느 순간 난파된 삶에 대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했고 남아있던

이백만 원짜리 샤넬 백과 함께 떠났다

배를 타고 일주일을 버티던 아빠는

돌아올 때마다 오징어 두 마리를 매어왔다

비린내가 깊어지던 만큼

질척질척하게 새어나오던 가난은

발밑으로 쌓였다

노을을 가둔 해구 밑은 아빠가

빚어낸 척추만큼 깊게 휘었다

일곱 살 생일선물로 받은 시집은 사치였고

혼자 남은 동생을 위해 대학

합격통지서를 찢어버린 나는

치약 뚜껑의 숫자를 세는 일을 했다

먼지처럼 흩어지던 하늘을 보며

눈으로 가난을 흘리던 동생에게

마지막 웃음을 선물하고 싶은 이유였다

 

어렸을 때 보던

오래된 노을은 이제 내 허리를 짓눌렀고

나는 해구의 바닥처럼 휘어갔다

 

오래된 노을이 저무는 날 

 

 

 

 

      

슬픔의 정의

 

할머니의 뒷모습에 대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은 하얀 가루로 남았고

하얀 방으로 추억이 갇혔다

마지막으로 남긴 손수건을 나는

가루세제로 빨았다 할머니 향이 나는

 

슬픔이란 한없이 부드러운 거라서

나는 단단한 추억을 거품으로 터뜨렸다

비눗물은 빠지지 않았고 기억처럼

어색한 웃음으로 웃는 사진을 위해

굳어지는 촛불을 준비했다

 

진달래꽃을 피우고 싶다는 할머니는

분홍색 가디건과

꽃무늬 한복을 입고 길을 걸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는 듯

울던 마지막 순간을 빨지 못한 나는

새하얗지는 못한 손수건을 태웠다

 

평생의 고단함은 한 줌

빻은 재로 남았고

아직 유무를 알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나는 자장가를 불렀다

 

내일은 함께 뒷동산 진달래 축제라도

가시자고 중얼거렸다

내일의 날씨는 맑음이니 

 

 

 

      

 

추억

 

읍내에 갈 때마다 엄마는

오래된 구멍가게에 들르곤 했어요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산적을 닮았던

아저씨는 바보 형이 하던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했어요

읍내 입수를 지키는 가게는

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가장 먼저 맞았고

햇볕을 늦게까지 물고 있어서

사람들은 오래된 구멍가게를 좋아했어요

 

오백 원 콩나물을 삼백 원에 파는

구멍가게는 이익대신 신뢰를 판다는

어려운 말을 했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쥐어준 까끌까끌한 눈깔사탕의 수만큼

아저씨가 좋아지고는 했어요

 

삼십 분을 걸어 간 읍내에서

하루를 책임지는 동안

구멍가게 구석에선 엄마의 손을 놓은

아이들이 오 원짜리 딸기 맛 사탕을 빨았고

백 원 두부 한 모와 오후의 손길을 바꾸던

엄마들은 반찬거리를 해결했다고 말했어요

 

더 이상 볼 수 없는

오래된 구멍가게는 대형마트의

입간판이 세워질 자리이고

어린 날에 추억에 대해

터로만 남아있는 동안 나는 오래된

눈깔사탕을 천천히 삼켜요

지난날까지도

    

 

 

 

 

신화

     -에로스를 위하여

 

늦게야 나는 그대의 자아를 인식하고

타인으로 갈라진 시선에 대해

편지를 써요 황금 양털로 된

양피지 위로

 

달궈진 촛농은 그림자에 녹아드는 시간을 방해하고

마주친 눈에 대한 배신감으로

떠나간 날개는

남아있지 않아요

 

지상을 옅은 촛불과 함께 남겨둔

것에 대한 대가로 익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매일 밤 조금 얼룩진 속옷을 빨아요

잿빛 수면복은 깨끗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눈물은 태양이 하혈한

자국처럼 번지고 있네요

 

헤어짐은 어쩌면

나비의 날개를 가지기 위한 관문

지워지지 않는 흔적에 대해 보랏빛 날개를 다는 것은

그대의 미소를 그리워하는 소녀가

드린 기도라는 것을 아나요

세 달 저승으로 가는 심부름과 함께

 

하얀 날개를 가진 그대는

오래전에 떠나 버렸는데 오롯이

깨끗할 수 없는 나는

거울에 비친 나의 자아를 깨뜨려요

 

 

 

 

 

쥐의 거리

 

낮은 곳을 걷는 걸음은 작고

짧은 보폭을 위한

대답은 소리 없는 아우성

세월을 거부하듯 홀로 뛰쳐나온

뾰족한 앞니는 지나온 길의 흔적을 지워요

나의 긴 꼬리는

지난 시간이 봉분처럼 쌓이는 걸

막기 위해서예요

나를 닮은 인형은 언제나 검정이고

그림자에 숨던 나는

거리를 방황하는 내가 아닌 것들에게

들킬지 몰라 쓰레기통을 뒤지는 날이면

나는 다리 사이를 뛰어다녀요

주어진 자리는 버려진 박스에 뚫린 구멍

또는 버려진 낡은 작업화 한 짝이고

날카롭게 주름진 수염은

내일의 걱정으로 떨리고 있어요

어둠 속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믿나요

사실 나의 적들은 어둠을

더 잘 바라보고 온전히 쉬지 못하는 나는

주린 배의 여린 털들을 골라내요

아직도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지지 못해서

썩어버린 소음을 듣는 동안

소화될 수 없는 기삿거리를 삼키고

떨어지는 과자 부스러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욕심은 내지 않을 거에요

나는 매일 어둠으로 나를 지우고

나에게 주어진 자리를 아직도 찾을 수 없네요

지친 도시에서는



이소현

010-8956-27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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