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공모 [전깃줄 외 5편]

by 교관 posted Aug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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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

조깅을 하다가 건널목에서 잠시 멈추어서 하늘을 보니 하늘은 보이지 않고 전깃줄이 눈에 들어왔다 뭘 많이도 먹었던지 뚱뚱해진 전깃줄이 지 몸의 무게를 겨우 이겨내고 있었다 전깃줄은 원래 일직선이었겠지 사람이 늘어날수록 전깃줄도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늘어갈수록 전깃줄도 새롭게 생겨났고 웃음이 많아질수록 전깃줄의 굵기도 굵어졌다 여기서 저 멀리 연결해주기 위해 전깃줄은 통화량을 먹고 점점 배가 부르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이러다 과부하로 끊어지겠어요 조금만 먹어 주세요 전깃줄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내 이야기만 할게, 나의 말만 전달해줘,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게 어려운 일인가 사람들은 전깃줄이 뚱뚱해지는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했다 한 사람의 생을 여러 번 먹다보니 많은 사람의 여러 번의 생은 세상의 전깃줄을 전부 뚱뚱하게 만들었다 전깃줄은 사람들의 통화량을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깃줄은 기실 뚱뚱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포기를 받아들이고 무거워지는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것이 전깃줄로서 생을 소리 없이 지속할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선택이라는 것을 

 

 

 

높새바람.

높새바람이 불어와 노란 꽃들을 겨울에도 피웠다 마법 같았던 15년 전 봄처럼 따뜻한 높새바람은 초초히 밤의 그늘을 지나 몸의 중심부에서 마른 뼈 위를 굴러다니다가 몸의 외부로 불어와 혼신에 生涯를 불어 넣었다 고행자였던 높새바람은 탐욕에 물들어가던 사막의 확장을 막았고 오후의 검은 가고일을 춤추게 만들었고 내장을 착하게 만들었고 壽액을 위에서 발끝으로 원활하게 해 주었다 높새바람이 아니었다면 생에서는 만나지 못할 폐와 말피기소체 높새바람이 捧下에서 소멸하고 세상의 노란 꽃들은 血淚를 흘렸고 시간을 들여 시들어갔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높새바람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진을 남겨두었어 그 여진은 수십 수백의 노란 갈래로 뻗어져 한바탕 큰 바람이 필요할 때 수축했던 노란 꽃들이 한 송이의 큰 꽃으로 뭉쳐진다 노란 꽃들은 겨울에도 피기 위해 높새바람이 남긴 여진을 타고 지금도 몸의 외부로 흐른다 

 

 

빗소리.

어젯밤에 비가 그렇게 내리더니 일어나는데 몸이 무거웠다 무섭게 내리던 비의 소리가 내 몸으로 전부 들어와 오늘 걸을 때마다 내 몸에서 빗소리가 난다 계단을 내려갈 때 평지를 걸을 때 오르막을 오를 때 빗소리는 모두 다르다 그러다가 나는 그 자리에 멈추고 만다 빗소리는 멀리 퍼지고 싶지만 벽에 부딪혀 파장이 깨지는 아픔을 호소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고 여러 영혼 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억울한 소리를 내기도 했고 흐르기 싫은 빗방울이 창가에 마지막까지 눌어붙어 있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걸음을 멈춘 빗소리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던 눈만 끔뻑이던 너의 무음이 들려 그 자리에 그대로 설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는 돌처럼 너의 무음은 무거운 빗소리가 되어 내 몸으로 들어왔다 오늘  밤 나는 태아처럼 몸을 말고 움직이지도 않고 잠이 든다 

 

 

 

반영.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힘들어도 꼭 돌아서 반물집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열심히 다리를

사부작거린다 닿을 수 없는 곳의 하늘도 구름도 아파트도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둔다 그렇게 자조의 감옥에는 나만의 피륙이 다 들어있다 투르게네프가 말하는 환멸

도 티에스 엘리엇이 말했던 잔인한 사월의 기억도 오도카니 소리를 지른 고독도 그 안에 둔

다 그 안에서 구름의 틈새가 벌어지고 빛기둥이 나에게로 떨어지는 이벤트가 일어난다 꿈과

현실을 땅과 하늘처럼 뒤 바꾸기가 가능한 나만의 감옥이여 땅의 눈물이 마르면 곧 없어질

나만의 감옥 속에 나는 꽁꽁 숨고 싶어라

 

 

 

나무의 사랑법.

나무는 외롭지 않다 나무는 인간보다 오래 살면서 인간만큼 보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수줍어서 겉으로 드러나는 법은 없다 나무와 나무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거미줄 같은 뿌리를 천천히 움직여 서로를 더듬고 알아가며 사랑을 한다 그들만의 통로로 뿌리를 그렇게 움직여 서로를 기억한다 그 기억은 수 백 년 세월을 흐르기 때문에 나무는 외롭지 않다 딱딱하고 컴컴한 저 어두운 곳에서 눈이 아닌 촉감으로 사랑을 나눈다 오로지 뿌리를 뻗어 서로를 만지고 서로의 몸으로 파고들어 은밀하게 온 몸으로 사랑을 확인한다 그들은 눈으로 보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나무는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기다림이다 마주 한 뿌리가 언 땅을 헤치고 서로에게 닿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뿌리의 가지가 꺾여 나갈까 꺾인 숨은 수액을 따라 올라가서 나뭇잎 하나를 떨어트린다 그렇지만 나무는 외롭지 않다 사랑하는 나무가 많은 곳의 땅에는 희망도 자라기에 우리는 그 땅을 걸으며 나무의 숨을 조금씩 뺏는다 나무는 우리에게 기꺼이 생명을 나눠주지만 외롭지 않다 그들의 사랑은 단단하게 서로를 잉태하기에 눈으로 사랑을 좇는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존재들인가

 

 

 

방충망에 매미가 붙었다.

방충망에 매미가 붙어 울어 재낀다 여름의 끝물에 다다른 매미는 음절을 끊어서 운다 음절이 끊길 때 어찌나 힘이 드는지 배를 말아 올리고 공기를 서서히 뺀다 그 소리에 한이 고스란히 담긴다 가만히 두니 매미는 방충망에서 삼일을 소리 지른다 홍어가 온 몸으로 소변을 배출하듯 매미는 온 몸을 사용해서 운다 생에서 사로 가는 길목에서 너는 생명을 노래한다 칠년의 결실 절박한 생의 기간 중 삼일을 방충망에서 매미는 운다 방충망을 두드리면 추락하여 영롱한 生聲의 소멸이 두려워 두었더니 너는 목 밑까지 차오른 말들을 배 밑으로 삼켜 소리로 뽑아낸다 너를 떼어내지 못한 나와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너와의 사이에는 삶이라는 결박이 도시라고 있다 갑옷같은 몸을 열고 나온 너는 진정으로 소리를 내고 감옥으로 들어간 나는 소리를 삼킨다 세상이 잡아 당기는 저 무서운 힘을 이겨내며 생을 노래하는 십오일의 삶 세상은 너희가 싫어 짧은 삶을 주었지만 너는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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