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 19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오는 길"외 4편

by 희희성 posted Oct 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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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오는 길



발길 닿는 곳마다 나는

푸른 옷소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돗자리를 피듯, 소들의 느릿느릿한 걸음을 뒤따를 때면

깊은 잠을 깨우는 무언가를 생각했다


봄볕을 울리는 휘파람 소리,

가끔은 워낭소리에도 무지개가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밤새 접은 종이비행기에는

반백년 전의 아픔이 가득 서려있다

아이들은 비명소리를

허물어진 꽃이라고 불렀다

죽어간 사람들의 원한이 이 긴 세월을 버텨온걸까


구름은 굿판을 벌이고

강여울의 열 두발 상모가 구슬프게 돌아간다

주인 없는 비석처럼

정박하지 않는 배에도

거제의 달밤은 자꾸만 기울었다

가는 곳마다의 발목을 붙잡은

마을 사람들의 염원은 공동체의 길을 걷고 있다


모래 알 가득 칠십리 길의 전망을 품은 거제,

입을 막아놓은 밤의 기억이 발목을 붙잡는다

말랐던 강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할 때,

눈으로 더듬어 보는 섬의 흔적,

발길 닿는 곳마다 사람들은

강의 길이 되고 싶었다




다포마을 전복들의 노래



구름 위로 피어나는 전복들은

바다 속을 뛰어노는 꿈을 꾼다

태초에 어머니의 뱃속을 자유롭게 유영하던 시절

하늘과 바다 사이에 그들이 있다

서로의 손을 잡고 깊은 꿈속을 헤엄칠 때면,

한여름의 꿈들이 밤바람이 되어 몰려온다

가끔은 서로의 옷깃을 가만히 당겨보기도 한다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던

비누거품처럼 불완전한 시간들,

밤새 쌓인 두터운 적막 앞에서

숨죽이며 살아왔던 부드러운 기억들이 있다

바람이 되고 싶다는 어머니의 냄새가 뚝뚝 떨어진다

미미하게 떠도는 숨 냄새에 오들오들 떨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기억들이 무르익어갈 때면

전복은 조용히 고요를 품었다

틈만나면 몰아치는 파도,

단단해지기를 반복하는 힘,

너무 쉽게 바뀌는 계절과 외부의 자극 앞에서

둥글고 단단하길 바랐던 전복들은

바람의 생존법을 배웠다

한 움큼이나 될까말까한 늦가을의 무성함


애들아 이제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자

전복들은 순간 반짝이는 별 같았다




최후의 진술



어둠 속에서 이 어린양을 구원해주시옵고.


뱃속에 가스가 차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유리병이 되었다

어머니는 유리병이 된 나를 언제나처럼

어린양이라고 불렀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한차례씩 부숴 졌다


생쌀을 우둑우둑 씹어 먹었다던 어머니,

버려진 암자 속으로 들어가

어머니의 생리혈을 핥기 시작한 후로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뱃속에서 요동치는 익사한 심부름들은

무언극으로 놀았다


나는 배가 고프면 마카롱을 먹었고

브래지어 캡을 포갤 땐 맨 발의 아이가 떠올랐다

아이는 뜨겁고 따가운 아스팔트가 싫다고 했다

입이 닳도록 지역번호를 외우는 내 옆에서

어머니는 틈만 나면 휴양을 꿈꿨다

누군가는 이 주절거림이 왕생기도문을 외는 것 같다고 했다


잠을 청하러 갈 때마다 울었다

거대한 보금자리가 생기면, 우리는 우선

정중하게 거절하는 법을 배웠다

막대사탕 같은 낡은 집,


계절이 다 닳도록 단맛은 우리 집을 군림했다

나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어머니 뱃속에서

모형자동차가 되어 놀았다




꿈꾸는 집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 집 다오

두껍아 두껍아


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다

심심하면 이 노래를 불렀다

입에 익숙하게 달라붙은 집을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내겐 꿈이 생겼다

작은 손으로 모래를 뒤엎고

모래의 숨결을 모아

함께 살 집을 짓는 동안

계절은 무수히도 많이 바뀌었다

그늘은 뜨거운 햇볕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바람은 두터운 발자국 위로

작은 집을 지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바닥을 귀이 여겼다

우리의 집은 언제쯤 튼튼해질까?

바람이 불 때마다 집은 흔들리고

남몰래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꽃이 되어 피어오르던 나날,

우리의 집은 언제쯤 향기를 낼까?

저마다의 꽃잎이 하늘 높이 떠오른다


우리는 매번 꿈을 노래했다

한낮의 꿈이 노을을 적시고

푸른 파도가 바다의 몸 위로 그림자를 만든다

내가 만든 집에

엄마 아빠를 초대하기까지

노을은 쉼 없이 내 등을 적셨다




오래 필 꽃



꽃 한 송이가 피었어요

그래요 내가 바로 그 꽃이에요

나는 화분 안에서도 나비의 잠을 탐냈지요

계절과 시간은 몇 줌의 바람과 햇볕과 씨앗을 품어주었구요

몸에 큰 화분 안에서도 저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온기를 먹고 자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며

창가에 자리 잡았던 세상은

내 성 안에서 말라갔어요

나는 다 자라기도 전에

향기를 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구요

예쁘다는 말에

줄기는 틈만나면 숨통을 옥죄여왔어요

더 이상 환하게 비춰주지 않는 태양에게

나는, 어느새 겁이 많아졌어요

어린 나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면

언젠가 세상을 내려다보게 될 줄 알았지요

그래요 세상은 아직

비바람과 폭풍이 불고 때론 갈증도 많은 걸요

풍경을 감당해내기에 벅찰 때 사람들은 비에 젖고,

불현듯 다가오는 고운 손길에 가끔 나는 움츠렸지만

따뜻한 마음들 덕분에

내 안의 꽃씨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어요

내가 자라날 때마다 우리 집은 둥글어졌구요

엄마는 매번 내게

고운 향기를 가진 꽃이라고 불러줬어요

식탁 위에 놓인 초상화엔

오랜 시간 잘 견뎌온 세상이 반짝 빛나고 있어요

모든 게 숨을 타고 흘렀구요

더 이상 향기를 훔치려는 사람들 뒤로

숨지 않기로 했어요

나는 더 이상 가뭄이 아니거든요

잘 견뎌왔다고,

너는 작지만 강한 아이라며,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들 앞에서

나는 오래오래 꽃 피울 거거든요






<인적사항>

이름 : 김희성

이메일 주소 : rlagltjd1235@naver.com

연락처 : 010-6295-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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