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19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공모 '비눗방울의 틈 외4편'

by 이오 posted Oct 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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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응모합니다.


비눗방울의 틈

 

삶의 틈은 새끼손가락 아래에 있는 것

 

비눗방울을 부는 소녀는

자신을 띄워 보내는 법을 알았다

 

빗물이 되지 못한 맹아萌芽

어설픈 아이들은 중력을 거스를 수 없다

천천히 낡아가는 아이들의

삶은 금세 터져버리곤 해

새끼손가락이 터뜨리던 비눗방울

비눗물은 흐린 잿빛이었다

 

비눗방울은 조금 허무한 것이라던

철학과 사이버 교수의 낱말

사이버를 사이비라고 발음하던 엄마는

어두운 조명과 빛바랜 침묵 사이에서 늘어진 거품을 만들었다

한숨 한 숨에 부풀어 오르던 이야기

이야기마다 숨을 불어넣는 것은

소리 없는 풍경에게 삶을 밀어 넣기 위해서이다

 

소녀의 침묵의 온도는 낮다

비눗방울마다 달린 침묵

침묵을 위해선 쉽게 몰락하던 말들을

되뇌는 법을 배워야 하고

새끼손톱은 빛 아래로 숨겨야 한다

 

투명한 비눗방울에 비추던 하루

뿌연 색을 감춘 하루의 색은 알 수 없다

자꾸만 미끄럽게 흘러내리던 비눗방울

비눗방울은 하늘을 닮은 잿빛이다

    


 

 

 

끈질긴 죽음

 

죽은 사람에게 한 줌 물을 부여한다면

죽은 사람은 머리카락을 기른다

꿋꿋하게 자라는 질긴

머리카락은 사실

가장 여리게 잘려나가던 찌꺼기

 

지난 생애의 슬픔에 대해 말해보시오

낡은 질문에 대해 할 말이

너무 많은 소년은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모두가 답이거나

또는 답이 없거나

어쩌면 질문도 주어지지 못한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다음 영혼의 갈림길에서의 방향을 지목한 후

망자의 영혼을 위로해야 한다

갈림길의 끝에는 성공이 있거나

또는 실패가 있다

 

국화는 무엇으로 물들지 모르는 순백

언젠가 우리는 웨딩드레스에 새하얀

국화를 달기 시작했다

 

노래 소리가 쉽게 끊기는 저녁

거친 주먹으로 멈춘 소리는

절단된 음표를 모아 오선지를 그린다

휙휙 지나가는 시간을 위해

사용하는 음은 시 플랫

반 음 낮은 삶

시간은 뒤로 흐를 수 없다

 

죽은 사람은 한 줌 물에 대해 어김없이

머리카락을 기른다,

영양가 없는 단백질 덩어리를

산 사람처럼

 

    



 

골목

 

골목에는 오래된 행간이 머문다

 

사내의 지친 웃음을 닮은

걸음은 절뚝이고는 했다

비명은 소리 없이 터져 나온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사내의

꼬리에 감춰진 울음을 거부한다

넓적다리 부위를 때린 쇠몽둥이는

사실 바람으로 이뤄져 있다

 

높은 바람의 온도는 자꾸만 낮아지는 것

담장마다 심어진 유리조각에는

조각난 웃음이 잠들고는 한다

노란 달빛처럼

 

붉은 피로 쓰이는 시의 음정마다 달린 노래는

검은 음표와 위태롭던 음정

낮은 으르렁거림이 잇다

어느 골목에 대입할 줄

모르는 단어들은 눅눅하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울음은

빗물에 섞여 다시 몸을 새긴다

어쩌면 빗물은 슬픈 맛이다

 

높게 개인 파란하늘은

작은 손짓에 닿지 않고

파란하늘을 담은 두 눈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파도의 온도

 

낙조가 파도를 천천히 덮었다

언젠가 슬픔의 잔재를 묻던 파도

파도의 온도는 언제나 3도식 낮다

 

너울처럼 번지는 집어등 불빛은

광산의 간드레 위태로운 빛을 닮아

어지럽게 흩어지고는 했다

 

삶을 파도에 매어두세요

파도는 삶보다 더 흔들릴테니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에 대한 대답은

영원한 청춘이라는 말 삶은 거친

바다를 닮았으므로

 

숨비소리 한 줌

길게 아래로 가라앉는 상처는 썩을 수 없고

파도에는 종종 비밀들이 쌓이곤 했다

너울을 닮은 비밀들

 

비밀은 난파된 배처럼 쉽게 불어났다

여러 낱말들로 조각나는 것이다

 

소문이 지어낸 이야기

파도의 잔재를 위해

그대는 아무런 노래를 띄우는 사람들

 

파도는 여울의 노래를 거두고

파도의 온도는 언제나 더 낮은 법이다

 

 

  


   

비 오는 거리

 

거리는 유난히 짙은 회색이다

겨우내 새롭게 불어오던 바람은 쉽게 죽었다

 

고슴도치의 바늘처럼

단단하게 솟아난 바늘은 운판을 때렸다

종종 떨어지던 빗방울은 거칠다

고슴도치의 바늘을 닮아

 

구름에서는 잿빛 비가 떨어져 내리는데

빛은 트일 수 없었다

 

그림자의 이면은 빛은 아니므로

눈물은 빛에 반짝이곤 했다

 

비오는 날의 거리의 울음은

유난히 반짝이고는 했다

잿빛 거리는 음습하고 언제나 습도는 높은데

 

회색 거리에 눅눅하게 떨어지던 빗방울,

빗방울은 금세 꽃을 틔울 예정이다

 

주인 없는 구름은

번개를 몰래 키우는 중이고

새로운 꿈들은 또다시 죽어갔다

웃음 뒤에 숨겨진 무표정을 읽어야 하는 도시

거칠게 비가 내렸다

회색빛 쏟아지던 빗방울

거리는 유난히 짙은 회색이다




이소현

010-8956-27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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