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 한국인] 제 2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그 물에 빠져 죽다 외 4편

by 고이든 posted Oct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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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반, 노을 냄새

 

다섯 시 넘어 해가 뉘엿뉘엿

마지막 숨결 깊게 내쉴 때

그림자는 연회색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진해진 내 마음 알 곳 없는 고향으로 향하네

 

고층 아파트 일층 입구에 들어서면

차가운 대리석 싸늘한 공기 너머

어디선가 저녁 김치찌개 냄새 날릴 듯

 

시끌벅적 아이들 재잘거림 조금씩 줄어가고

어릴 적 젊은 내 엄마 그리운

오후 다섯 시 반

 

라디오의 지나간 옛 노래 사이

그래 이제 내가 마흔이구나, 뒤늦은 깨달음

노을이 지나가는 지금

노을 냄새 물들어 이유 없이 서글픈 내 마음

 

 

 

 

 

야근

 

여섯시 회의는 딸아이 웃는 모습 멀어지게 하고

여덟시 컨펌은 딸아이 아득한 냄새 그리워지고

아홉시 작업은 그리운 딸아이 안아보고 싶게 하네

 

내 젊음은 야근과 함께 날아가고

내 아이 아기 모습은 내 기억에 담지도 못한 채 지워져 가네.

 

냄새도 모습도 보드라운 살결도

멀리멀리 떠나가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보고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듯

내 모든 걸 앗아가는 시간

 

지금은 열시

모두 타고 재만 남은 내가 퇴근하는 시간

 

 

 

 

 

아파트 내 고향

 

억지로 무너지고 있는

삼십년이 지난 아파트

 

그 거리를 지날 때마다

어린 시절 나를 그리워한다.

 

내가 내 딸만 했을 그때

엄마는 이곳이 천국이었다.

 

반지하에서 살던 우리 가족은

청약이 당첨되었다며

 

방 한 칸이던 그 집에서

다섯 가족 드러누워

몇날 며칠 웃었겠지.

 

무너지고 있는 지난 추억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향이 사라지는 듯 가슴이 시리다.

 

연년생 다섯 살 여동생과

개미잡기 좋아하던 세 살 남동생

젊었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서지는 아파트 먼지와 함께 공중으로 날아간다.

 

이젠 내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파트 내 고향

이젠 안녕

 

 

 

 

그 물에 빠져 죽다

 

널 그리며 파고 또 판

구덩이

그 안에 너를 향한

눈물이 담기고 담겨

깊은 우물이 되어


너의 미소

비춰지는 그 물에

입 맞추려다

나 그 물에 빠져 죽다

 

 

 

 

 

재입사

 

우리집 시계는

내가 재입사하던 그 날로 멈춰졌다.

서랍위 쌓여가는 펼치지 못한 아이의 미소

구석진 곳 먼지쌓인 다섯시의 여유

계절지난 옷은 서랍에 뒤엉켜 흐르고

작아버린 양말은 주인이 없다

유치원 사진 속 아이의 옷은 낯설고

엉성하게 묶인 머리카락은 슬프다.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도

주소를 몰라 연락처를 몰라 갈 수 없는 우리

주말 몇 번의 외식과

통장에 조금씩 쌓여가는 돈과

옷장의 채워지는 옷들

그걸로 행복을 느끼기엔

잃어야 할 것도 잊어야 할 것도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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