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제 20차 창작콘테스트 시 응모 - 아빠 냄새 외 4편

by 깜난 posted Nov 13,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빠 냄새


향기 나는 것들은 모두

아빠의 옷장 안에 보관했다

수많은 양복은 항상 좋은 냄새를 뿜었다

검은 계열의 양복들이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화학 냄새를 뿜어댔다


회식 때 억지로 들이킨 술 냄새

진상고객 앞에서 흘렸던 땀 냄새

가족들 생각하며 맡았을 불쾌한 돈 냄새


사랑하는 가족들 앞 그 냄새 맡게 하기 싫어서

그래서 그렇게 비누들을 옷장 안에 집어넣으셨다


오늘도 아빠 양복은 슬픈 향기를 뿜는다



번짐


정열적으로 사는 우리 엄마는

빨간 물감이다


번지고 번져 생긴 아들이라는 자국은

처음엔 붉은빛, 엄마 같은 색을 뿜더니

이내 생기 없는 검붉은 색으로 빛바랜다


어둡고 탁한 나는

이제는 다시 붉게 돌아갈 수 없어 방황한다


나의 번짐은 좀 밝았으면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했는데

내 색이 너무 까매서

아직은 그럴 수 없다


푸른색도 분홍색도 주황색도 만나서

검붉은 내 색을 밝게 만들려고

이리저리 여행한다


여행을 마친 뒤엔 부디

우리 엄마처럼 예쁜 색이 되길,

긍정적 번짐을 하는 사람이 되길,

내게 번져간 사람이 또 다시 좋은 번짐을 하게 되길.






남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없어졌다


흐름대로 살다가,

꿈을 잃어버렸다


꿈을 그리려고 펼친 도화지는

여백만을 남긴다

공허함을 남긴다






자책


비난의 화살을

내쪽으로 향하는 법을 터득한 후

셀 수 없이 많은 그 날카로운 촉들을

온몸에 꽂아 살아왔다


딴에는 십자가 위의 예수처럼

그게 옳은 거라 생각하며 살았나 보다


핏빛의 화살 끝은

맞아도 꽂아도 찔려도

적응되지 않는 고통을 수반한다


그만두고 싶어 이 미친 짓

그래도 이게 내 업보다, 성격이다 되뇌이며

쉽사리 고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적막


내 하루는

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그 짧은 적막을 위해 존재한다

그 아주 잠깐을 보려고 노력한다


Articles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