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과다
보통 호흡으로는 숨이 가빠
한숨으로 들이쉬고 내쉰다
걸어도 걸어도 까마득한 것이
나는 달을 향해 걷고 있을까
사랑하는 이는 기약이 없고
해 짧은 하루는 야속히 자취를 감춘다
벅차오르던 숨이 터져
기나긴 한숨으로 땅에 스며든다
꿈, 사랑, 희망
이 모든 것들의 아득한 원근감에
멀미가 이는 밤
관성
시작은 한 번의 곁눈질이었다
그 곁눈질에 몇 번의 대화가 덧붙여졌고
며칠의 설렘과 몇 달의 기다림,
수도 없는 입맞춤과 이야기들이 덧칠되어
몇 년의 회한과 그 이상의 그리움이 더해진 지금
나는 아직도 너를 관성처럼 사랑한다
이제는 홀로 쓰이는 둘만의 이야기
네가 없는 곳에서 너와의 이야기를 만든다
너는 오늘도 내 모든 시간을 안고 흘러간다
풀꽃
길을 가다 불현듯 멈춘다
나를 붙잡은 건 한 송이 풀꽃
어릴 적 집에 오는 길이면
풀꽃을 엮어 꽃다발을 만들었다
강아지풀 민들레꽃
패랭이꽃 할미꽃
색색이 모은 풀꽃다발은
집에 있는 엄마 손에 쥐여드렸다
하루는 엄마가 울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다
엄마 왜 울어,
꺾어온 풀꽃다발을 안겨드렸다
길을 가다 불현듯 멈췄다
나를 붙잡은 건 한 송이 풀꽃
엄마 눈물자국에 피어났던 엷은 풀꽃
이제는 꺾지 않는 한 송이 풀꽃
인간의 관성
변치 말고자 했던 것은
너무 쉬이 변해버렸고
변하고자 다짐했던 것은
그대로 남아 굳어버렸다
어쩜 이렇게
인간의 관성은 차등적인지
마지막 문자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을 생각하면 기침이 나온다
간절히 답장을 기다리는 내 모습을
아마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리라.
절망감 그러나 기대감,
한없이 내려앉는- 하지만 북받쳐오르는,
모든 상황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묘한 자신감
정체모를 감정이 뒤섞인 문장들이 당신을 향했다
그 자신감은 빠알간 껍질 안에서만 새하얀 사과의 속살과 같아서,
나를 벗어나 이내 산화하고 갈변하여 거무스름한 자괴감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가며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실망감, 좌절, 분노, 후회에 휩싸여
더딘 시간 속에 뒤집힌 속을 부여잡고
그저 견뎌내는 것뿐이었다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메스꺼운 시간들이 이어졌다
울리지 않는 휴대전화의 환청을 수없이 듣고
멀미에 지쳐 눈이 풀릴 때쯤 되어서야
네 답장은 태연히도 내 앞에 서 있었다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점점 빠르게
나는 당신을 마주한다
빈 속에 차가운 단어들이 쏟아져 내려오면
아,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 안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저
차가운 흙구덩이 속에
길길이 날뛰는 미친 들짐승들을 넣어두고
그들이 잠잠해질 때까지,
아무리 귀를 막아도 들리는 울부짖음을
온 몸으로 버티어내며 주저앉아있을 뿐이었다
당신을 만났던 계절은
내겐 너무도 일교차가 컸던 나날들이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극과 극을 오가던 날씨에
온종일 감기에 걸려있었다
그런 나를 당신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준 적이 있었을까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기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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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