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문
바닥의 소인이 찍힌 지문을 살핀다
네 군데마다 무료한 숙성과 젖은 파문이 있고
내면 안쪽 깊이, 꺼내듯 자국을 쏟아내는 몸짓
칸칸의 그늘로 좀 더 낮게 엎드려야한 시절에
바닥에 더덕, 달라붙은 생혈을 새긴 채
겹겹이 뒤엉킨 길들을 풀어놓으려는
발의 문이 엇박자다
자칫 갈증 때문에 저 넓은 시베리아 벌판까지
날아갔다는 풍문에는 솟대를 잡았던 슬픔이 각을 세웠다
매번 반복되는 시퍼런 각질 슬그머니 치켜들 듯하였다
뭉툭한 구릉을 따라 몰아치던 기억들은
바닥까지 덧대어진 족쇄였다
밖으로 간신히 흔적을 내미는 일은 거의 없었고
어느새 쑥, 질러 자라는 꽉 움켜진 지문
이리저리 가늠하고 있는 똬리의 덫도 깊었다
먼 평야에서 가까스로 날개를 오르내렸다
긴 부름으로 환해지는 생의 길
푸른빛 하늘을 모색하며
쉼 없이 바닥 면상을 다지고
엉거주춤, 저릿하게 도드라졌다
남루한 능선 마디마디
엉켜 뒹구는, 뿌려 칠 듯 휘도는 문을 좇으며
스스럼없이 가야 하는 곳을 간다
그 바닥의 문紋, 환한 길이 트인다.
시선과 시각
시선이 집중될 때, 안개 사이로 드문드문 처지는
시각은 뒤꿈치가 멀다.
두 발로 벗고 나서는 것이 일이 되었고
짧고 신속한 맹목이 되었다.
멀어지는 시선視線는 발로 옮겨갈 때마다 첨벙거리고.
감봉된 시각은 늘 아래로 처지는 법.
층층의 공간을 짚으며 시선이 시각을 모으고
뒤집으면 칼끝은 나를 향한다.
허공을 더듬는 눈빛으로
손을 흔들거나 달려오면 시선은 사나워졌다
맞물린 선처럼 서로를 놓지 못하고 제 넋을 출렁이며
시각은 각진 미소로 주시한다
새하얀 캔버스에 색채와 질감으로 안고
양 날개를 펴고 먼 길을 달리는 시선과
주름진 바람으로 사물을 투시하는 시각이
뻐드렁니처럼 드러나 있다
비뚤비뚤하게 전경과 배경이 마주하며 물렁해질 때
온갖 중독된 시각視角, 날 서게 뻗어 있다
내일도 엿볼 수 있을 저 뉴스의 가려운 궁금증,
벅벅 긁어주는지, 붉은 시선이 흥건하다
정면으로 시선, 시각을 악착같이 붙여본다
맞닿은 곳으로 곁촛점, 주름진 동공의 몫이었다.
투구꽃
잔인한 역사의 광기에 쫓겨 이곳까지 왔다.
멀고도 먼 깊은 산속까지 쫓겨났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마땅했지만
후일의 도모를 위해 그렇게 은닉하여
기나긴 서러운 한을
발목아래 비밀리에 숨기고 있다.
그것이 흙속의 육신을 맹독으로 집어삼켰을 것이다.
애간장을 끓듯
재앙의 낯 달을 삼킨 채
벗을 수 없던 자줏빛 투구.
덜 삭은 안타까움에
오랜 세월 불면에 부르튼 창백한 입술.
저 어긋나게 교대로
불침번 서는 이파리들을 보아라.
머리 맞대며 안쓰럽게 회포를 풀며
집요하게 어울린다.
저주받은 세월을 마늘처럼 들고
부적삼아 악귀 달래며
허공에 안타까운 사연하나 적어
그리하여 손꼽아 기다려온
둥근 달빛이 아린 사연을 추궁하면
가슴에 응혈 진 속울음은
거친 톱니가 되어
산신령의 무딘 귀를 열게 한다.
틸란시아*
거기, 깊고 아득한 잎들이
가라앉지 않는 것도
해파리처럼 넘실거리며
햇빛을 뾰족한 촉수로
빨갛게 물들이는 모빌의 파인애플
천정에서 늘어뜨리는 공간의 생명
보랏빛 꽃대가
아랫도리가 없어도 당당한 것도
허공을 꽉 움켜진 무한한 자유
흙이 필요치 않는
상식을 벗어난 덩굴처럼
질긴 그의 잎사귀들이 퍼져나간다.
단단하게 용수철처럼
겹겹으로 훑어보며
천공의 메마름과 먼지를 깨고 있을 뿐이다
*틸란시아Tillandsia: 공기 속 수분과 먼지 속 미립자를 자양분으로 살아가는 식물이다
세 개의 시선, 큐브
보이는 면은 좀처럼 달랐다
모서리의 삼각 면에 예각지게 용접되어 있었지만
비스듬한 기둥을 맞잡아 이어진
세 개의 꼭지, 최대한의 보이는 면이었다.
몇 층의 부력으로 기둥을 밀어 올렸다
어제까지 세워졌던 벽과 창
오늘부터 다른 면들이 예고된 바닥처럼 떠받쳐 올랐다
뚝 끊어진 벼랑길을
서로 이어 불규칙적으로 서로를 포갠다
보이는 면은 일정한 층을 머무르는 種,
쉬이 머무를 수 없는, 온갖 기억을 묻어둔다
정수리를 돌다가 소용돌이치는, 경계
네모의 속성에서 탈피된 의혹
하나하나 돌리고 돌려
휑한 면을 끼우고 수상한 잎맥을 엮고 있다
탁탁, 돌리다
일렬로 튀어 오르는 돌발의 큐브
속도만 전념하다 제 발목에 갇히던 당신
면 안팎을 거세게 몰아 당차게 안착한다
개방된 면과 면이 벼려지고
반듯한 생의 지혜가 되고
그렁그렁 해묵은 패착이 떨어져 나가는
면과 면의 선택적인 점괘
주위에서 부활하는 면의
연속적인 착란錯亂이었다.
세 개의 시선,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면이 길게 뒤척인다.
방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