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학 한국인] 제 2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새것上" 외 4편

by 이호정 posted Dec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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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것上


새것은 첫 티끌이

그리도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아

북북 찢는 공책처럼


첫 발자국을 찍는

새하얀 눈밭도

어쩌면 새것이다


새것은 잠시나마

고고함을 유지하고

견고했던 빛을 잃고

언젠가 낡아버린다


첫 발자국을 찍은

새하얀 눈밭 또한

꺼먼 땅바닥을 드러내며



환상


나는 너를

힘껏 간지러피우고

달아나 버린


책에서 본

어느 애벌레의 흔적


달밤,

모두 침묵할 때

다시 파닥이는


꿈에서 본

어느 흰 나비의 표상



안정


돌풍이 찾아와

머리칼을 휘저어야

깨닫는 것


거친 소낙비가

어깨를 두드려야

느끼는 것


잔잔한 일상이

돌부리에 걸려

실금이라도 나야

과거의 안정을 본다



넘치다


조그마한 호수는 바다가 부러웠다


작은 나룻배를 배 위에 올린 호수는

차오른 보름달 담는 것도 모자라

드넓은 은하수를 가지고 싶었다


거대하고 푸른 바다는

밤이면 별가루 뿌린 듯 반짝였고

넙대대하고 깊은 몸은

참으로 인어를 품을 것 같았다


호수는 바다가 되고 싶었다

이슬비든 소낙비든 쏟아지면

온 힘을 다해 쓸어 담았다


호수는 점점 불어나

그 찰랑임이 위태로웠지만

호수는 그치지 않았다


어느 장마철,

하늘이 무너질 듯 내리쳤다

호수는 신이 났다

바다처럼 삼키면 될까봐


그리고 호수는 넘쳤다



새것下


새것은 첫 티끌이

그리도 어렵다

몹시 맘에 들어

고이 모셔둔 흰 옷처럼


첫 발자국을 찍는

새하얀 눈밭도

어쩌면 새것이다


새것은 잠시나마

고고함을 유지하고

언젠가 낡아버리지만

추억을 담는다


첫 발자국을 찍은

새하얀 눈밭 또한

그 겨울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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