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2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좌판 위의 생선 등 5편

by 이오 posted Dec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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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판 위의 생선

 

일요일의 좌판엔 눈깔부터 썩어가는 것들이 누워있다

마른 지느러미를 퍼덕이는 것들

그들은 오래전에 파도를 잃어버렸다

 

느린 유속을 타고 도착한 곳은 새롭고 크고

혼잡했다

그들은 파도를 거슬러 오르는 법을 잊고

제 몸을 민물에 담구는 법을 배웠다

소금기가 없는 물은 따가웠다

 

일요일이면 굴비를 엮듯 지친

몸뚱이를 포개어 달궈진 좌판에 내었다

좁은 골목을 헤엄치려면 몸이 말라야 했다

 

이번 명절에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것들은

낡은 기차의 표를 바라보다가

표의 가격을 가늠하다가

통장잔고를 더듬거리다 눅눅한

일요일의 오후를 들이마셨다

 

몸 위로 새겨지는 얼룩진 순간들

머리 위에는 언젠가 초라한 몸을 내리칠

다듬잇방망이만 부유하는데

마른 지느러미를 펄럭이는 동안

천천히 썩어가고 있다

 

뜨거운 햇살이 끈적이는 일요일 오후 내일은

어떤 고난들이 주어질까

 

좌판에선 비린내가 피어오르기 시작하고

눈깔이 다 썩어버린 사람들은

길거리를 방황하는 중이다




레드-

 

아홉시 뉴스에서 오늘 저녁엔 붉은 달이 뜬다고 했다

 

고기나 끊어다 먹자꾸나,

나는 낡은 정육점에 갔다

오십 년을 지냈다는 빨간 간판 모서리에선 갈빛

녹이 새어나왔다

3대로 내려오던 주인아주머니들 이제

마지막 여자아이는 다섯 살 남짓이다

 

붉은 고깃덩어리를 꺼내던 거친 손

고깃덩어리는 달처럼 붉은 과즙을 뚝,

흘렸다

 

이젠 다들 마트에 가더라고요,

가게에 딸린 쪽방에선

어린아이가 티브이를 보고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고깃덩어리를 잘라내는 기계처럼 덜컹이는 삶

정육점의 구석에선 쌓아올린 것들을

쏟아내고 싶다던 말들이 발효되고 있다

언제나 너무 많이 나온 공과금과 썩어가던 고기의 삶들

어린아이의 오줌처럼 암모니아 냄새가 나던,

 

손에 쥔 것도 없이 야박해진 인생이지만

백 여 그람 더 얹어주는 주인아주머니의 손짓엔 아직

따뜻한 달의 여운이 남아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하늘에는 붉은 달이 떠 있다

고난의 흔적처럼




고속도로를 달리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를 몰아요

지지직,

떨리는 이명을 귓속에 심고

터널을 지나듯 어두운 밤하늘에는 위태로운

별빛이 하늘에 총총 떠올라요

 

굽은 허리에 매달린 고난들

포인트처럼 쌓이는 주행거리만큼

덜어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바뀌는 건 달마다 고장 나는 타이어정도

 

차창이 하얗게 번지면 나는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고속도로를 헤매요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사람들은

이십사 시간을 몰며 노래를 불러요

 

산들바람에도 휘청이던 고난 지나쳐버린

카메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야 하니

내가 남겨질 순간들을 즐겨요

나는 내일이면 이 길을 되돌아올 걸요

 

십년, 고물이 되어버린 라디오

나를 따라 낡아가는 라디오를 켜요 지직,

흐려진 초점들과 흩어진 별빛들

나는 매일 이 길 위를 떠돌며

고난을 허리에 단단히 매어놓아요

시속 이백 킬로

로 달리며




스물의 밤

 

채도가 낮은 밤을 걸었다

거리에선 치킨을 튀겨내던 눅눅한 기름 냄새가 났다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가로등은 깨진 채 깜박거렸다

 

알파벳의 첫 번째 기호를 보관할 수 없던 종이

이번 A는 뇌물들이란다,

나는 음료수박스에 넣을 하얀 봉투를 긁어모았다

 

첫 번째 적금을 깬 날

나의 밤들은 천천히 어두워졌다

남색의 하늘이 검정빛이 되어가고 있어,

나는 군대로라도 피신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밤하늘엔 꿈을 닮은 별들이 매달려있을까

빛을 잃지 않고

 

높은 채도의 밤에 새겨진

그림자는 짙었고 늪과 닮아

발버둥 칠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아홉수의 나이에 쌓인 불행은 그 다음 해에

피어난다는 것을 깨달은 거리엔

비명소리를 닮은 바람이 지나가고

매일 저녁마다엔 주문받은 찌꺼기 인생을 튀겨낸다

 

모락,

오르는 김은 한숨의 흔적

스물의 밤은 낮고 무겁고

차갑다




추억

 

원형입구의 방에는 토끼를 키우자꾸나

눈이 빨간 토끼를

토끼는 이름이 없었다

금세 죽어버리고 말 테니

 

토기는 황금빛 회중시계를 목에 걸었다

이름표대신

 

긴 귀로 듣던 지구의 자전 소리를 기록하고 싶어

나도 귀가 길어지고 싶은 걸지도

토끼는 어쩐지 야옹,

하고 울었다

 

토끼의 회중시계를 거꾸로 돌려볼까

그럼 어렸을 때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을 텐데

나이 소원은 여전히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이다

 

위로 펄쩍,

튀어 오르는 토끼는 오래전 유행하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해

나는 추억을 기르는 토끼를 데려다 놓았다

 

엄마 토끼의 눈은 왜 빨개요

 

아이의 질문은 토끼의 색처럼 하얗고 부드러웠다

토끼가 오물거리는 이야기들은 어느 날 툭,

선물처럼 떨어질 것이다

 

금방 죽을 거라던 토끼

토끼는 꽤 오래 방안을 차지했다




이소현

010-8956-2717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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