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20차 창작콘테스트 시 부문 응모 - 공장을 연주하는 일 외 4편

by 학생이c posted Dec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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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연주하는 일


텅 빈 악보에 덩그러니 적힌 노랫말처럼

어머니의 손가락 마디에는 벌써

물집이 꽃씨처럼 잡혀있습니다

미싱 일을 할수록 자꾸만 번져가던 고통

음표들이 전달하는 반주 소리에 맞춰

스스럼없이 따라가고 있나봅니다

의류 공장 위 어머니는 언제나 쭈그리고 있습니다

끝이 분명치 않는 하늘이 나의 노동 시간 같다며

입버릇처럼 한 소절을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뒤이어 아삭아삭 들려오는

웅장한 연주소리, 쉬는 시간이 마감된 뜻이죠

어머니는 돌처럼 딱딱해진 손가락을

억지로 펴며 어둠을 깁는 일에 다시

눈동자를 굴립니다

열 평도 안돼 보이는 작업실 속에는

시린 눈으로 꾸벅꾸벅,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이

눈알을 굴립니다

손가락 하나하나, 작업 옷에 스스럼없이 박혀가며

그들에게 눈과 코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돈 한 푼이라도 벌어오면 그만이죠 허나

지금보다 더 많이 벌면, 소원이 없죠

열띤 합창을 하는 듯 방 안을 맴도는 노랫소리 그러나

밖에서 가리키는 우린 그저 서민이란 이름뿐입니다

밴드들로 덕지덕지 꾸며낸 손가락을 누가 볼까

어머니는 뒤늦게 태연한 척 애쓰지만 나는

이미 두 눈이 눈물바람입니다


엄마 자리


눈을 지그시 감은 하늘 속에서 엄마는

별빛 가루를 뿌리며 달아나기 시작한다

서서히 환해지는 엄마의 몸짓을 이젠

들여보내지 않기 위해 커튼을 쳐야 되는지

방 안에 놓인 엄마의 빈자리는 유난히 

광채가 예술이었다


뽀드득거리는 소리, 눈가를 간질이기 위해

노랗게 부어오른 아침 햇살 속에서

불 켜지 않아도 환히 보이던 집은 천천히

농도 짙은 어둠으로 구석구석 뒤집혔다


다른 누군가가 빛이 되어가던 몇몇 밤

주인 잃은 침대는 진득한 먹칠에 움푹 패여 결국

어둠을 들이지 않기 위해 문을 닫기로 한 나는

숨넘어가는 침묵으로 덥수룩한 속을 꿀꺽

침을 삼키며 참아내기 바빴다


더 이상 아침 해가 뜨지 않는 집처럼

나의 몸도 견디기 버거운 걸까

눈동자 속엔 빨갛게 익은 달이 오르면서

뜨거운 물방울이 하나씩 떨어져갔다

떨어진 유성우는 곧 엄마의 보금자리

분비물을 탄 빛들은 비를 내리기 위해 다시

하늘 속에 풍덩 빠지고 만다


빛나지 않던 저 먼 바다에서부터 별들이

손을 맞잡고 별자리를 이루는 밤중에

물과 하나 된 엄마 자리는 물결 따라

눈부신 테두리를 마음껏 그려내려 한다

조각난 채 박힌 여러 감정들을 모아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향해 뚝뚝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 생각이 자꾸 나 미동도 할 수 없었다


밤이 오면 나는 신나게 춤을


햇빛을 머금은 창가에 커튼을 여는 순간

바깥에 박아놓은 별들이 방 안으로 내려앉는다


말소리가 자취를 감춘 밤

은은한 형광 빛이 우수수

천장 위로 미러볼처럼 들어선다

형형색색의 불과 별이 블루스를 타는 동안

나의 귓가에 자장가를 들려준다

이불을 펼쳤으니 눈을 뜨지 말라는 걸까

눈앞의 초점이 흐릿해지면서

꿈나라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는

성장기의 나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가 있는 동안 방 안의 온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무작정

반짝거리는 별들 속에 나는

심장소리처럼 쿵쾅대는 리듬에 맞춰

팔다리를 막 휘젓고

옆으로 막 굴러다니기 일쑤였다


열광의 도가니로 흘러간 방바닥, 나의 몸이

불끈거리기 시작할 때

가슴에 단비를 뿌리듯이 알람 소리가

제어를 하는데 앞장섰다

이제 곧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되는 것이다


어둠을 머금은 창가에 커튼을 여는 순간

눈부신 아침 해가 머릿속에 풀썩 주저앉는다

밤이 오면 나는 신나게 춤을 추었기에

불쑥 커져간 나의 몸을 붙잡고 돌돌 말린

이불 속에서 시름시름, 앓기만 했다


바느질을 하다


어머니는 바늘귀 바깥쪽을 따라 실을 넣으려고 한다

헐렁해진 벽지 앞, 찢겨나간 꽃을 향해

꿰매려는 시늉도 하신다

바늘을 만진 손가락마다 고인 피는

삭힌 냄새가 진동하곤 했다


언젠가 태양의 눈동자가 어둠을 헤집고 올라오던 날

천막도 씌우지 않은 땅 위로 어머니는

구멍 난 배추 몇 포기 펼쳐두고 행인들의

발목을 잡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른 곳으로 거리를 두는

눈동자들 속에 자석처럼 잡힌

배추 이파리, 텅 빈 지갑 안에 꿀꺽

삼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어머니는

속으로 감정을 삭이기만 하였다


나의 집에도 밝은 밤이란 존재했는지

달빛이 쏟아지던 방 안 구석

어머니, 바지 뒷단이 찢어졌어요

새로 사주시면 안 될까요?

홍시를 한껏 베어 먹은 듯 말 한 마디에

벽에서 자라던 배추 꽃잎이 불쑥

떨어져나갔다 푸석한 흰 머리카락도

맥없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결국 잡잘 하지 않은 수입만큼 무엇이든

감추려는 습관을 기르고 있던 걸까

국경선처럼 뻗어도 닿지 않던 앞에 

흰 머리를 뽑아 바늘구멍을 통과시키다 결국

내 바지에 더 이상 어떠한 꽃도 자라나지 않았다

언젠가 키워오던 배추꽃도 시든지 오래다

바늘실로 가난의 실상만을 감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집은 베일에 가려진 바느질의 산물인 것이다


버스가 떠나는 시간


뉴스 오프닝이 현란하게 울리는 새벽

차차 커지는 소리만큼 방 안에는

작은 빛이 불되어 밝아오고

헤드라이트 반짝이는 소리가 한 발자국

성큼성큼 걸려온다

방문을 드나들던 집 안 거실, 청색 교복이

또각또각 걸어 다닌다


어느 이른 아침, 어둠이 해산하는 사이

버스 경유를 안내하는

정류장 앞, 책꽂이를 메고 해를 들어올리는

어느 한 가운데 정차한 채 나는

그대로 얼어붙기를 반복했다

저 멀리서부터 하산하는

버스 번호 안내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느새 짐을 싣고 가야겠다는 내가

내 몸을 실어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소리에

맞장구를 쳐주는 코 고는 소리와

감정 없는 표정, 하나같이 말할 입이 없다

생명선이 들러붙은 심장 속에 각자

학업의 짐을 바삐 옮기는데

한 순간의 오차는 없을 뿐이었다

버스가 달리듯이, 자주 쿵쾅거렸다


책상 앞, 하루의 절반 가까이를 보내다

나 혹은 누군가를 태우고

불현듯이 버스가 떠나는 그 시간에

나의 정착지는 과연 어디쯤에 설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안의 짐을 모조리 털어서

불안한 심장박동에 벗어나 자연스레

버스를 타고 싶었다 



이름 : 이충기

이메일 주소 : alfl2382@hanmail.net

HP : 010-2754-7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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