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제 21차 창작콘테스트]- 삼청동 카페에서 (외 4편)

by 이연우 posted Dec 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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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삼청동 카페에서

 

다투는 오래된 연인을 만났다

조잘조잘 소리가 들린다

 

양쪽 입장을 듣고자 이어폰을 꺼냈다

평소 시끄러워서 듣지 않았던 음악을 틀었다

 

너도 나도 목청을 키워

힘껏 소리를 지른다

 

둥둥 음악이 더 강렬해진다

좌우 좌우 기타소리 드럼소리

이름 모를 가수의 목소리

 

그래 그래

너도 옳고 너도 옳다

 

사실 틀린 것은 어디에도 없을텐데 말야

마치 고장이 난 내 이어폰처럼

    

 

 

2. 순둥이


시장에서 울부짖던 똥개

얼룩덜룩 젖소 같던 우리개

 

말썽부리지 말고 순하게 자라다오

 

갓난아기 시절, 엄마 배 위에 누워잤던 나

우리 순둥이한테도 똑같이 해줘야지

그리하여 내 배 위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던 그 개

 

벽지를 뜯고 바닥에 쉬를 싸는

사고뭉치 우리 순둥이

 

학교 가던 날

순둥이를 아저씨한테 보낸다는 말에

수저를 들고 밥을 먹었다

 

깨갱깨갱-

밖에서 들리는 순둥이의 울음

찬밥을 물에 말아 김치를 올려먹다가

목이 매어온다

 

순둥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데

꾸역꾸역 아침밥을 먹어본다

 

허공에는 밥풀떼기 하나 묻어있는

숟가락 하나

내 밥도 지킬 수 없었던

나의 어릴 적

    

 

 

3.너의 목소리가 들려


폭포에 취해 모든 것을 잃을지 몰라도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바다처럼 가득 넘쳐 비가 되어버린다

흙은, 내리는 청음에 우산을 버리고

마른 목을 축였다

    


 

4. 누에

태어나고 싶다- 작은 욕망과 얕은 법칙에 의하여 누에는 돌을 깨뜨려 날개를 등에 업고 중력을 가른다

보이지 않는 날개짓에 무거운 공기가 진동을 했다

 

본능적으로 향기에 취해 그것에게로 간다

결코 가깝지 않은 길 누에는 날고 날아도 돌고 돌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세상의 저편에 있는 듯 그저 멀게만

수도 없이 만난 모든 형편들에 누에는 잠시 날개를 접는다

누에가 가진 것은 무용지물이다

칼을 들어 빛을 보았건만 보이는 것들은 기다림의 미학이다

가진 것은 오로지 후각과 미세한 몸뚱아리 뿐

 

네가 알 수 없는 건 너의 그 벽 때문이다

왕래할 수 없는 너의 공간을 부실 수도 들어갈 열쇠도 없다

딱딱한 성벽에 가로막혀서 문을 두드려도 대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편을 열어보았다 읽지 않은 채 쌓여진 편지만이 공간을 매꾸고 있다

여기 사는 사람은 이 공간을 두고 여행을 떠났나보다

 

누에는 날개를 잘랐다

이내 휘청 거린다 그렇다고 등질 수는 없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던 태어나서 처음으로 향한 장소일테니

그러므로 너의 여행지를 말해준다면 기꺼이 너에게로 향하겠다

 

너의 답신을 기다리는 동안 너의 공간을 복구하겠다

흩어진 파편들을 모아서 네가 편히 들어올 수 있도록

기꺼이 네가 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아픈 잿빛들을 네가 좋아하는 색으로 칠하겠다

 

그동안 잘라낸 날개는 버리지 않겠다

집앞의 절벽은 모두 모아 붙이겠다

언젠가는 쓸모가 되도록

너와 내가 낙하할 수 없도록 진동하는 이 공기를 네가 음미할 수 있도록

    


 

5. 낭만

 

우리는 모두 낭만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이

그 대표적인 예일테지요

 

한낱 사랑이 낭만이 될 수 있을지

의아하지만 아무튼 어때요

당신들의 머릿속에 있는

환상의 일종일 테니깐요

 

우리는 모두 낭만을 꿈꿉니다

개인의 일상 속에서도

낭만이란 이름으로 변주된

소박한 꿈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친 혀의 요깃거리 같은

달콤한 요리를 만드는 식당도

당신들이 찾는 낭만일테죠

 

우리는 모두 누워서 꿈을 꿉니다

개인의 침대에서 쏟아져내리는

꿈들은 허망하게 사라져갈테지만

그래도 우리는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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