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차 창작 콘테스트_시 부문 공모

by 손아무 posted Dec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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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이야기


그 날은 노량진 고시촌 골목 한 쪽 포장마차에

이른 저녁부터 죽치고 앉았다.

친구 놈이랑 며칠 잡다한 지식과 함께 쌓인

응어리 한 덩어리 안주 삼아 시간을 죽이던

그 날은,

어떤 아버지에게 한없이 얕은 개울을

헤엄치게 한 날이기도 했다.

그는 관광이외의 목적으로 한 번도 온 적 없던

- 수산시장이나 들려봤을까 -

낯선 서울의 가장 어두운 노량진 골목에서

자신의 가장 밝은이를 찾기 위해 몇 날을 헤맸다고 한다.

이불도 없는 고시원에, 주인 없는 캐리어를 벗 삼아

별도 없는 천장에게 그는 어떤 기도를 했을까

 

지쳐버린 그는 바로 뒤 테이블에서

사라진 아들과 닮은 내 친구를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우리가 그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할 즈음 그는

소주 한 병과 먹다 남은 두부김치를 들고 다가왔다.

별 말도 없이 몇 번 테이블에 소주잔을 떨어뜨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조용히 전달되는 그 나무껍질 같은

건조함과 아픔을 가만히 느낄 수밖에.

 

그 날, 친구는 아들이 되었다.

사챗돈, 공무원 시험, 여자 친구 등

빈 종이에 그리듯, 펼쳐놓았던 희망찬 이야기는

잠시간 아버지의 별이 될 수 있었을까

 

어두워지지 않는 노량진의 어두움은

별이 될 수 없지만, 그 날,

포장마차에서는 작은 우주가 펼쳐졌음을

기억한다.





남한산성


유난히 춥고 길었던, 그 해 겨울.

얼어붙은 강물에 걸음은 쉬이 미끄러졌고,

그 혹독함 속에 누구도 마른 낙엽 하나 줍지 못했다.

동상은 솜털처럼 비루한 몸 곳곳을 채워갔지만,

하얀 세상에 멀어버린 눈으로는 찾을 것이 없었다.

거대한 성벽이 우리를 가둔 채 곳간은 비어갔다.

 

작은 승리는 큰 산을 넘지 못했고, 해서 쉼 없이 산의 능선을 노려다 본다.

()이 아닌 사람이 저 너머에 있을까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가마니에 엉덩이를 비벼댄다.

우리의 숨바꼭질은 술래가 없었다. 그들은 훤히 불을 밝히고 지폈다.

따뜻한 화덕을 둘러싸고 핏기가 가시지 않은 육() 고기를 굽고 있었다.

술래들은 우리를 찾는 것엔 관심이 없었다.

단지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푸짐한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정한 의미의 인내심 싸움. 한기와 허기는 가끔 적의(敵意)의 방향을 돌리곤 했다.

 

매일 밤, 나는 성을 넘고 싶었다.

전란 속에도 영감(令監)은 영감이었고, 임금도 임금이었다.

 

그날 낮, 거창한 명분으로 우리에게 저승길을 안내할 동안

우리 태반은 이미 엎드린 자세로 땅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겨울의 차가운 무게로 압사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겨울에 죽어간다던 내 말을 들은 옆집 칠복이는

조금 더 냉철한 말투로 죽기 바로 전 나에게 고백했다.

자신은 사실 살아있었던 적이 없다고.

 

임금은 결국 예를 갖췄다.

늘 받던 것을 주는 사람의 마음은 비통하다.

삼전도에 피가 스몄고, 아래로만 향하던 임금의 시선은 보다 높은 곳을 향했다.

다만 임금이 본 것은 이 아니었다.

저승길로 향하는 긴 행렬 속에 나 또한 임금을 내려다보았다.

 




땅굴

 

반 쯤. 내려간다, 땅속으로 조금 간다. 매일.

천적을 피해, 땅 굴로. 약간 어둡지만 안전한 곳으로

지열은 미약하지만 나를 덥히고 햇빛은 다정하다.

 

스무 살 쯤, 그 집은 공포였다. 발을 디뎠으나 땅은 아니었다.

철골과 시멘트로 포장한 공중 감옥에서, 불안하기만 한 하루의

합으로 생을 영위했다.

좁은 상자로 음식을 나르듯 날아다니던, 그 시절, 다행히

오래가지 않았다.

 

자본은 자신보다 높은 것을 싫어하는 듯, 조금씩 나를

끌어내렸다.

난 땅이 좋았고, 땅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 좋았고,

안전한 곳이 좋았고, 한 번쯤 나무의 뿌리와 사는 상상도

즐겼고, 내려감에 취해있었다.

좁지만 복잡하지 않고 어둡지만 무섭지 않은 안식처는

동경해 바라마지 않는 로망이다.

 

어둑해진 저녁, 조금 더 어두운 그 곳으로 내려간다.

비록 별은 없지만 적()이 없는 곳으로.





어탁

     

새벽스러운 저녁 또는 아침 그 어느 날,

찬 공기가 필요하여 굳이 낚시를 한다

갈대 사이로 쉬이 공기가 흐르지 못하여

답답함이 감싸온다

 

어둑한 수면에 빠져들 듯, 낚싯대를 휘두른다

 

새벽, 물속이라고 풍족했으랴 풍덩 소리와 함께

붕어가 물어댄다

차갑게 식은 머리로 손맛을 음미한다

 

팔뚝만한 붕어가 눈앞에 있다. 펄떡이는 에너지는 없던 식욕을 부른다. 사진을 찍는다. 새벽, 어디 자랑할 곳이 없다.

사람이 없다. 흔히 보이던 낚시꾼들이 지레 부러워 모습을 감췄다. 어탁을 찍자. 편평한 곳이 필요해. 자갈을 치운다.

허겁지겁, 급해진다. 진흙을 고루 편다. 약간 홈을 만들고 약간 시들어가는 덩어리를 누인다. 고이 누인다. 불편하실까

붕뜬 공간에 흙도 채우고, 수평을 맞춘다. 어디서 흘러나왔나, 이 에너지. 덥다. 이제 마지막, 붓을 꺼낸다. 곱게 칠하자.

내 붕어. 너의 그 우람함을, 그 각선미를 보여줘. 꼬리부터 비늘 하나하나 정성스레 칠하고 또 칠하고. 지느러미, 아가미.

그리고

 

부릅뜬 눈알이 날 내려다본다.

강을 타고 찬바람이 불고 다시 차갑게 식어간다





억새풀

      

그 친구는 항상 1분단 첫째 줄에 앉았다.

그가 맨 앞자리를 고집했던 건 수업에 대한 열정은 아니었다.

그냥 뒤로부터의 멀어짐, 도망에 대한 필요였다.

교탁에서 가까운, 그나마 보호가 가능한 자리였던 것이다.

언젠가 그 친구는 맨 앞자리의 유익함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뒤돌아 본 친구와 눈이 마주칠 일이 없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특히 1분단은 문에 가까워서 교실에서 사라지기에도 좋다,

2분단 가운데 맨 앞자리는 그런 면에서 맨 뒷자리만큼 못하다,고도 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그 친구의 성적을 보고 교사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수업 태도는 좋은데 성적은 왜 그 모양이냐고,

하지만 그건 교사들이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바른 자세를 유지할 뿐이다.

눈은 칠판을 향했지만 의식은 항상 뒤통수 너머에 머물렀다.

수업시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눈에 띄는 행동이므로

당연히 그 친구는 제대로 대답한 적이 없었다.

다만 다들 그러기에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을 뿐,

요즘 애들은, 이란 말을 붙여가며.

 

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의외로 존재감이 옅어져 가는 일인 듯하다.

그 친구가 처음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날,

담임교사의 짧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며칠 반복됐던 결석에도 의아함은 느꼈지만 불편함이 없었기에 궁금함도 없었다.

책상이 언제 치워졌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레 사라졌고 그 친구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갔다.

졸업 후, 길에서 아는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 얼굴을 왜 알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처한 내 표정에 관심 없이 먼저 손을 내민 그 친구는

다정스런 말투로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손현준/010-7580-2599/biunnam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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