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시월의 마지막 날
머나먼 여행을 떠난 이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이별에
꽃들이 그의 주위를 지킨다
남은 이들은 운명을 볼모삼아
자신을 위로하고
남겨진 이름 앞 한 글자가 낯설지만
무뎌짐이라는 과제를 해본다
그들 앞 뿌옇게
선하게 그려지는 그의 모습
열심히 초단위로 눈을 깜빡거려
애써 그를 지워본다
그 흔한 경고장 없이
그를 세상에서 퇴장시킨 신이 원망스럽다
신은 십일월을
그와 함께 보내고 싶었던 걸까
신은 과연 그를 가을하늘의
눈으로 만들고 싶었을까
낯선 이
한 배에서 태어났지만
꽃을 참 좋아하던 소년이
아스팔트 위 꽃 한 송이가 될 때까지
완전한 남이 되기까지
너무 달라져 버린 우리
어느 날 그는 낯선 이 라는 이름을 가지고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풍선으로 열기구를 만들어야하는
끔찍하고도 큰 용기를 알기에
우리는 손가락 하나를 살며시 잡아본다
그걸 본 그쪽 사람들은 질투인지 증오인지
그들의 차가운 총으로
냉랭함을 사정없이 쏘아댄다
살을 뚫는 아픔의 비를 거둬내고
떠오른 해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일까
이 고통보다 더 한 아픔이 있었으리라
그가 상상한 이쪽은 무엇일까
감히 상상할 수 있으리
여러 말 대신 그의 머리맡에 올려둔
‘정(情)’
三人成虎
-세 사람 이상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을 알기에
알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지쳐버렸기에
이것이 내 운명이라고
콩밥과 함께 가슴속 깊은 통곡을 씹어 삼킬 뿐
나를 ‘악마의 유대위’라고 부르던
빨갱이들
악한을 걸러내는 하늘의 그물이 무섭지도 않은지
진실을 군화의 밑창에 숨긴 채
야간보초를 서며 시뻘건 눈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간다
빨간 아이들은 옆에서 풍기는
검은 냄새가 그리도 무서웠는지
어느새 나는 토끼를 잡아먹은 호랑이
시뻘건 그들이 만들어낸 동물이기에
나약한 호랑이는 쇠 냄새 가득한
차가운 우리 속에 갇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