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시부문 공모전 (빼곡한 시 외 4편)

by 나름시인 posted Jan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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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곡한 시

 

 

더러운 것도 순결한 것도

끼어들 곳 없는 시는

빼곡해서 할 수없고

하기만 하다

시와 손잡으면

시를 껴안으면

텅 빈 날

그날의 날

난 시로 써

시로 쓰여져

빼곡히 할 수있고

않기만 하다


장미

 

 

아주 먼

그리 크진 않은 별의

어린왕자와 장미

 

-오만에 져버린 장미

 

다시 피었을까

넝쿨을 더듬어도

상처만이 한 움큼 피어나고

 

-머얼리 져버린 장미

 

여우의 장미는 장미가 아니기에

오늘도 피어나길 기다리는

그 장미

 

 

 

늦은 저녁 학교의 복도는

얼룩말 지나간 자리

그 자릴 지나다

문득 드는 생각이

이 줄무늬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가

하고 생각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검은 무늬가 사라지면 흰 무늬가

흰 무늬가 사라지면 검은 무늬가 드리우는 것이다

 

나는 야생마가 되고 싶은

살찐 나귀이다

 

내 도축장을 둘러볼 적에

야생마는 자라서 나귀가 되고

나귀는 자라서 노새가 된다

내 도축장 하늘을 올려다 볼 적에

나는 야생마가 되고 싶다

 

노쇠한 노새는

야생마를 추억하며

나귀로 노새로 기른다

 

검은 말이건 흰 말이건

무엇이 그리 다른가

하고 생각하면

그 말이 그 말이고

이 말이 이 말인 것을

 

나는 검은 말이 싫다

나는 흰 말이 싫다

나는 얼룩말이 싫다

 

내 두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해 볼 적에

 

나는 야생마가 되고 싶은

살찐 나귀이다


강박

 

 

가슴의 떨림이 머리마저 죄여온다 편을 나누던 선들이 수도 없이 많아 이 좁은 바닥을 매울 때 쯤 돼서야 나의 섬이 두둥실 나타나려나 결국 나또한 그들 무리에 끼길 원치 않았던가 바퀴벌레처럼 비좁은 편의 틈에 살아남는 것이 죄악이라면 죄악일 테지 결국은 본색도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서로 자신의 색을 칠해주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마치 지옥도 같다 거울하나 없는 이 좁은 공간에 서로 비벼지면서도 색 하나 섞인 적 없고 카멜레온같이 주변 흉내나 내며 살더라 그것도 빛이라면 빛이지 차경도 경치이니 나도 결국 강박을 넘지 못한게야 차경만 하고 산게야

 

1.5-나의 위선에 경의를 표하며

 

 

어느 날 신이 엉거주춤하며 나에게로 왔다 그러더니 내가 뿌린 씨가 적다며 나를 반으로 갈랐다 내가 뿌린 것이 다르다며 나를 반으로 갈랐다 그리 갈리고 갈려 내 가루가 되었느니 하물며 나에게서 두 줌만 때어가더니 내 가슴이 이리도 타오르는 것을 쯔쯔거리며 혀나 차대었다

 

-그의 신발 끈을 묶어주려 한 것이 그리도 악한일이란 말인가!

 

어느 날 염소 같은 것이 나에게로 왔다 그러더니 자신의 사각형을 내가 날아가 버릴 때까지 한참동안 설명했다

 

-그것은 신발조차 없었다

 

내 그리 뿔뿔이 흩어져 세상에 내리 뿌리 내릴 때 신이 다시 나에게로 왔다 그러더니 날 믿고 있었다며 날 부둥켜안았다

 

나의 구역질조차 인자하게 웃어주었다

-나의 위선에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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